[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내키는 대로의 독서와 글쓰기 방법
남 의식 말고 재밌게 읽으면 돼
독서 익숙해지면 감상 써보길
이전보다 삶이 더욱 풍성해져
가을은 작가들이 바쁜 시기다. 전국에서 책 축제나 북토크 같은 독서 행사가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글쓰기에 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진 걸 느낀다. 어딜 가나 글쓰기 강의를 하면 끝도 없을 만큼 많은 질문을 받는다. 나 또한 가을이 오면 전국으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북토크나 글쓰기 강의를 한다.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문학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이전까지는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이곤 한다. 책 제목을 슬쩍 보면, 한강 작가의 작품인 경우가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올해 가을은 문학과 책의 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읽는 방법'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인다. 강연을 하러 갈 때마다 독서법에 관한 질문이 꼭 나오고 많은 학부모가 아이에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방법을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내키는 것'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책에 푹 빠졌던 것은 만화책이었고, 그다음에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엔 좋아하던 학습 만화책들을 보느라 밤이 깊어져 가는 줄 몰랐다. 그다음에는 시험 기간에도 푹 빠져 읽었던 '해리포터' 시리즈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만약 청소년권장도서 목록 같은 걸 누군가 들이밀면서 강제로 '데미안'이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걸 읽게 했다면, 나는 세상에서 책을 제일 싫어하는 학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독서'가 일종의 '힙'한 행위로 인식되며 '텍스트힙'이 유행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교양 있는 척하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책 인증샷을 올린다며 '과시형 독서'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그 동기가 어찌 됐든 책을 좋아하게 되면 그만이다. 남들에게 교양 있어 보이려고 읽기 시작하든, 재미로 읽기 시작하든 책과 친해지기만 하면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삶을 장악하는 많은 것이 그렇게 '일단 친해지게' 만든다. 모바일 게임들은 무료로 설치하게 해 일정 부분 무료 플레이를 하도록 만든다. 그런 뒤 일단 그 게임에 빠져들면 유료 과금을 유도한다. 스마트폰 속 콘텐츠들도 모두 공짜 같지만 어느새 우리는 각종 구독료 등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소비로 유도하는 방식을 역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고 싶은 게 '독서'라면, 일단 나를 '책'이랑 어떻게든 친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SNS에 인증샷 올리는 재미로 책과 친해지는 것도 좋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재미로 독서 모임에 가입해도 좋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 의외로 몰입이 안 된다면, '빨간 머리 앤'이나 '메리 포핀스'를 읽어봐도 좋다. 한 권을 다 끝내고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보다는 여러 책을 들춰 보면서 마음에 '꽂히는 것'을 찾는 것도 좋다. 웹툰을 고르거나 드라마를 고르듯 내 마음에 맞는 책을 부지런히 탐색해 보자.
그렇게 독서와 조금씩 친해진 다음에는 글로 감상을 써보는 것도 좋다. 요즘에는 많은 독서 모임에서 독후감을 권유하기도 한다. 독서에는 묘한 기억상실증이 있어서, 책을 덮고 나면 무슨 내용인지 잊어버린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좀머 씨 이야기' '향수'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문학 건망증'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글쓰기는 그런 건망증에 대한 하나의 방패가 된다. 아직 내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역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내키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감상 편 하나 남겨봐도 좋을 것이다. 역시 그 목적이 SNS에서 '좋아요'를 얻는 것이어도 괜찮다. 어쨌든 그렇게 글쓰기와 친해지면 족하기 때문이다. 독서도 글쓰기도 하나의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일단 이 놀이를 즐기게 되면 우리 삶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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