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력 떨어지고 충동적으로 행동 기후변화가 뇌를 망가뜨린다
주변 온도 2도 상승하면
폭력범죄 발생률 3% 늘어
뇌·데이터 과학자인 저자
기후변화가 자연환경 외에
정신에 미치는 영향 파헤쳐
"털과 땀과 그을린 살이 뒤엉켜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뇌는 뜨겁게 달군 미로 속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쥐처럼 안달이 난다. 말이든 표정이든 소리든 머리카락이든 사소한 거 하나라도 걸리는 날에는 과민성 살인이 이어진다. 과민성 살인이라니, 매력적이면서 끔찍한 표현 아닌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단편 '불의 손길'에서 은퇴한 보험설계사를 등장시켜 기온이 33도일 때 벌어지는 일을 이렇게 묘사한다.
알베르 카뮈는 어떤가.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은 맹렬한 열기가 '태양이 울리는 심벌즈 소리'처럼 두개골을 때리는 통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가.
인류는 태양의 열기가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후와 정신의 상관관계를 학문적으로 본격 연구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른바 '기후심리학'의 탄생이다. 과학자들은 최근 10년간 기후변화가 스트레스, 불안 등 심리적 문제와 같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뇌 과학자이자 데이터 과학자인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은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원제 The Weight of Nature)'는 책을 통해 기후심리학을 뇌과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해,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현상이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와 정신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샅샅이 파헤친다. 기후변화의 증거를 폭염과 산불, 태풍, 가뭄이 아니라 '우리 몸'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은 제법 섬뜩하게 느껴진다.
기후변화를 일찌감치 새롭게 인식한 기관은 다름 아닌 미국 국방부였다. 펜타곤은 2015년 7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기온이나 해수면 상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실제로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촉매제는 가뭄이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계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농민들은 도시로 떠났고, 대대적인 이주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 팽창이 반정부 시위를 더욱 폭발적으로 만들었다. 기후변화는 빈곤과 사회 갈등, 무능한 지도자, 취약한 정치 제도 등 기존 문제를 악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준 셈이다.
신경과학자들도 예측 불허의 기후변화가 어떻게 인간의 뇌를 망가뜨리는지 추적했다. 캐나다 신경과학자 폴 프랭클랜드에 따르면 망각은 뇌가 정보의 과부하를 방지하고 더 중요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능동적인 과정이다. 다시 말해 망각은 필요 없는 정보를 제거하는 행위이며, 망각이 일어나는 비율은 환경이 얼마나 예측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환경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정보의 유용성이 떨어져 망각이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기존의 기대를 계속 배반하면서 새로운 상황으로 몰고 간다. 1950년대만 해도 북반구의 여름은 기후학적으로 8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3개월로 길어졌다. 이대로 간다면 2100년에는 여름이 한 해의 절반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평년값을 계속 웃도는 기후변화는 '기후 망각'을 일으키고 결국 기억상실을 유발한다.
인간의 뇌는 열에 민감한 부분 중 하나다. 기온이 높아지면 뇌세포는 뇌의 핵심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에너지로 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39도부터는 뇌 구조 조직에 변형이 일어난다. 인체의 신경계와 순환계는 뇌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이 과정에서 인지능력이 희생된다. 실제로 기온이 오르면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에어컨 없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에어컨이 갖춰진 기숙사의 학생들보다 인지 능력 테스트에서 13% 낮은 반응 속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기온 상승은 또 뇌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을 급감시켜 충동성을 키우고 보복 행위도 증폭시킨다. 경제학자 매슈 랜슨은 주변 온도가 2도 상승하면 폭력범죄 발생률이 3% 증가한다는 것을 수치로 환산해 보여준다.
2009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호수에서 10살짜리 소년이 수영을 즐긴 뒤 8일 만에 뇌사 상태에 빠져 생을 마감한 사건이 발생했다. 소년의 사인은 뇌수막염이었는데, 고온의 수영장이나 호수에서 서식하는 이른바 '뇌를 먹는 아메바'로 불리는 네글레리아 파울러리(N. 파울러리)라는 생물에게 감염된 것이 치명적이었다. 이 아메바는 고온의 물에서 더욱 번성한다. 더 이상 호수나 수영장에서의 수영이 낭만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요즘 따뜻한 가을 날씨로 반팔을 입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온이 치솟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여전히 기후변화는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외부의 일쯤으로 치부된다. 바로 우리의 몸 안에서 '기후 괴물'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지구가 미치기 전에, 인간부터 미칠 것이다." 저자의 섬뜩한 경고를 허투루 흘려 버리기엔 지금 지구가 너무 뜨겁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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