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권 토의 시도 제압하라"…北외교관이 공개한 김정은의 지시

안채원 기자 2024. 11. 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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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참사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북한 그리고 통일 포럼 : 북한 경제와 대외관계 평가’ 세미나에서 ‘3대 세습과 고립 외교’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2024.08.26. suncho21@newsis.com /사진=조성봉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관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세계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구체적인 지시 내용들을 공개했다.

리 참사관은 15일 서울 종로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북한 인권 공동 토론회'에서 지난 2016~23년 북한 외교관 시절 평양 외무성과 주고받은 북한 인권 관련 대응 지침과 보고 사항 전문 12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북한 인권 특별보고서'의 작성자에 대해 "인정, 상종도 하지 않는 일관된 강경 입장을 취하라"며 "우리는 토의 자체 불참하라"고 지시했다. 또 "대신 우리 지지 대변하는 나라 최대한 늘여 적측 대변 세력 압도하자는 전술적 의도에 맞게 책임적으로 활동하라"고 했다.

지난해 9월 외무성에서 발송한 전보 내용에는 "78차 유엔총회에서 10월 23일 '조선인권 상황 특별보고서' 토의, 11월 중순 반공화국 '인권결의' 강압채택 시 주재국(겸임나라) 우리(북한) 지지 발언에 내세우기 위한 활동에 박차, 결과 건당 보고를 할 것"이라는 지시가 담겼다.

2016년 1월15일 '올해 인권 대적 투쟁 방향 건'이라는 제목의 전보에서는 "올해 인권 대적 투쟁에서는 유엔 무대에서 벌어지는 반공화국 '인권 결의' 채택 놀음에 계속 강경으로 맞서 나가면서 안보리에서 우리 인권 문제 토의 시도 제압하는데 기본 두고 활동할 것", "우리의 대외적 영상 높이고 적들의 잡소리 눌러버리기 위한 여론 공세 계속 진공적으로 벌릴 것" 등 지시가 이뤄졌다.

또 "우리 조국의 벅찬 현실, 인권 실상 법률 실천적으로 론증하고 소개하는 대외 선전 깊이 있게 전개", "유엔 무대에서 미국의 고문 만행, 과거 일본군 성노예 문제, 유엡에서의 피난민 사태 등 미국, 서방의 특대형 인권 유린 행위 자료적으로 폭로, 회의 긴급 의제로 제소 등 역공세전 벌릴 것" 등 구체적인 지시가 담겼다.

리 참사관은 "전문을 공개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며 "그럼에도 끔찍한 인권 만행의 배경이 실제로 김정은 지도부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 국제사회가 모르기 때문에, 김정은이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를 다 알면서도 이를 막기 위한 조종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무대들에서 오고 가는 북한 인권에 대한 모든 설전이 김정은에게 빠짐없이 보고되고, (이에 대해) 김정은이 빠짐없이 지침을 주고 있다"며 "이런 면에서 볼 때 김정은은 결코 대북 인권 공세에 무관심하지 않고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했다.

리 참사관은 "김 위원장이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세습으로 가기 위해선 인권 문제를 잘 다루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며 "주민 인권을 끊임없이 탄압하는 김정은의 폭정에 대해 명백히 알고 끝장내기 위한 노력을 배가로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인권이 무참하게 유린되고 침해당하는 인권 불모지의 땅으로 전락했다"며 "북한을 감싸는 나라들에 호소하고 싶다.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사회의 공격을 받는 다른 나라들의 인권 문제와 다르다. 다른 나라의 영화를 봤다고 처형하는 나라가 있나. 북한 인권 문제를 특별히 따로 취급하는 유엔(UN) 내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변해정 기자 =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통일부·국가인권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 공동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통일부 제공) 2024.11.15. photo@newsis.com /사진=변해정

리 참사관은 유엔의 북한에 대한 UPR(국가별 정례인권 검토)이 북한 인권 개선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리 참사관은 "북한이 공개 처형이나 정치범 수용소를 인정한 것은 치밀히 계산된 전략"이라며 "북한은 UPR을 굉장히 선호한다. 그 어느 나라도 UPR에선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 어느 나라도 UPR의 권고를 전부 이행하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맥락에서 북한도 (세계적 흐름과) 같이 간다는 것"이라며 "몇 개는 받아들이고 몇 개는 배격하면서 대북 인권 공세를 흐리려고 하는 치밀한 계산된 전략이다. 인권과 세습은 매우 상반된 개념이기 때문에 북한 인권 개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UPR을 선호하는 것을 우리가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신화 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북한의 UPR 참석을 모두 긍정적으로 볼 순 없지만 우리는 UPR만큼은 계속 참석하는 북한을 이용해야 한다"며 "북한의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한 국가라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장으로 UPR을 만들어야 한다.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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