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칼럼] 불평등 완화를 위한 레버리지 포인트…사회 제도의 중요성
(서울=뉴스1) =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20%의 국가들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20%의 국가들보다 30배 정도 더 부유하다. 가난한 국가들이 부유해지더라도 부유한 국가들의 소득을 따라잡지 못한 채 이 격차는 지속된다. 이 영구적인 격차의 이유로 '사회 제도의 차이'를 제시한 이들이 바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이다. 세 학자는 유럽 식민으로부터 도입된 다양한 정치경제 시스템을 연구하며 제도와 부의 축적 관계를 밝혀내며 국가들 간의 부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들은 또한 제도와 차이가 왜 지속되고, 제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발전시켰다.
한국인 최초로 소설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미국 타지에서도 자랑스러움과 기쁨을 느끼던 중, Acemoglu, Johnson, Robinson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또한 정치학 박사과정 동료들과 함께 무척이나 반갑게 느낀 소식이었다. 2015년에는 복지를 증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소비 선택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시한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2019년에는 세계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효율적인 지원 방식을 실험적으로 제시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Abhijit Banerjee),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Kremer)가, 작년에는 남녀 임금 격차를 연구한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이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국제적, 국가적 차원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제도적, 개인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기존의 관념을 깨는 방향을 제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UN,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COVID-19 팬데믹이 가난한 국가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녀불평등도 더욱 악화하였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로는 여성이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직종에 일하는 비율, 비정규직 종사 비율, 돌봄에 대한 책임이 더 크기 때문에 여성의 경제적 참여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Goldin은 남녀 임금 격차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 일에 대해 다른 임금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 시장이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일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성별 직종분리뿐만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장시간 노동에 늘 대응할 수 있는 일자리에 사회구조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종사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직종으로 '약사'를 예로 들며, 더 많이 오래 일하는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면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함의를 갖는다.
불평등 완화의 필요성과 그 실천 방안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우리 정치와 사회 구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Goldin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듯, 개인의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자유의지나 행동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설계하에 선택지 자체와 선택 메커니즘이 변화할 수 있다. 이는 제도의 설계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례로, 우리나라 남녀 임금 격차는 2022년 기준 31%, 21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로 나타난다. 과거와 비교하면 남성과 여성의 교육 격차가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남녀 임금 격차가 상승하는 패턴을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낮은 여성의 정치 대표성 또한 연공서열에 기반한 조직문화로부터 비롯한 성별 격차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많은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연공서열제에서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또 배우자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은 육아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책임지며 배우자의 경제활동을 장려한다. 이는 또다시 여성의 경력 단절과 연공서열제의 고리를 잇는다. 따라서 육아를 공동으로 분담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동시 또는 차례대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문화부터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여성에게 치우친 경력 단절과 연공서열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불평등, 교육 불평등, 정치 양극화는 서로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와 선호에서 남녀 간 차이가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각 국가들에서 섬세한 레버리지 포인트 파악의 중요성과 선거 전략들이 정교해질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함축한다.
'불평등 완화' 그 자체는 '역차별'이 아니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역차별로 여겨지고, 이에 회의적, 폐쇄적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는 포퓰리즘적인 정책과 발언이 담론의 발화점과 방향을 유의미한 논의로 이끌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녀 임금 격차는 남성과 여성의 특성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설계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듯, 성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불평등은 인센티브, 거버넌스, 문화적, 법적 구조 등 사회 체계를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성을 상기한다.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불만과 갈등이 증폭되어 사회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는 역사를 통해 반복해서 입증된 사실이다. 사회 신뢰 구조를 훼손하고 국가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종류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며,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정교하게, 적극적으로 집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하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과거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며 우리가 오늘날 논하고 조성해 가는 비전은 우리가 살아갈 앞날이 될 것이다.
/정혜윤 2021년도 미래크리에이터(University at Buffalo - SUNY Political Science 박사과정 재학)
※청년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들의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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