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방주 엔드필드 "참신함과 익숙함 다 가질 수도 있구나"
하이퍼 그리프의 '명일방주'는 타워 디펜스라는 독특한 장르로 서브컬처계에서 굳건한 입지를 다진 게임이다. 서브컬처 타워 디펜스 게임이 나오면 가장 먼저 명일방주부터 떠올릴 정도니 말이다.
명일방주 이전까지 서브컬처 게임에서 타워 디펜스가 그다지 흔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이프 그리프는 언제나 그들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게임을 내놓는다. 지스타 2024에 출품한 명일방주의 후속작 '명일방주: 엔드필드(이하 엔드필드)'도 마찬가지다.
평범함을 거부한다. 엔드필드 역시 하이퍼 그리프만의 독자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즐겨보면 새롭다. 무턱대고 새로움만을 강요하진 않는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베이스를 깔아 거부감을 낮춘다.
엔드필드는 얼핏 보기엔 액션 게임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략 게임에 가깝다. 하이퍼 그리프가 정의한 공식 장르는 '3D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아마 대부분 "이게 무슨 소리인가"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데 해보면 그 의도가 명확하게 이해된다. 엔드필드가 말하고자 하는, 밀고 나가는 방향성은 정확히 전달된다. 최근에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에 바로 답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엔드필드는 꽤 잘 만든 게임이다.
■ 액션 게임? NO, (액션) 전략 게임
엔드필드의 전투는 참신하다. 근래 나왔던 서브컬처 계열의 액션 게임과는 다른 결이다. 빠른 이동을 통한 공격 회피, 패링이나 카운터 같은 전투 패턴이 없다. 그렇다 보니 공격을 눈으로 보고 회피 키를 눌러 피한다거나, 타이밍에 맞춰 방어하는 전법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적의 공격을 어떻게 파훼해야할까. 방법은 크게 2가지다. AoE 캐스팅을 시전하는 동안 캐릭터의 스킬를 사용해 패턴을 무력화시키거나, 공격의 전조를 보고 미리 걸어서 이동해 피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엔드필드는 엄밀히 액션 게임보단 실시간 전략 게임에 가깝다. 전략을 요구하는 데는 더 많은 근거가 있다. 먼저, 스킬 구성이다. 이 역시 일반적인 서브컬처 계열의 게임과 구성이 다르다.
총 네 명의 캐릭터로 하나의 파티를 구성하고, 각 캐릭터마다 하나의 스킬만을 쓴다. 캐릭터마다 2~3개의 스킬을 사용하며 곧바로 캐릭터를 교체해 연속으로 시전하는 기존 게임들과 다르다.
스킬마다 쿨타임이 별도로 존재하고, HP 회복도 제한이 있다. 스킬과 스킬의 연계에 집중하는 액션 게임과 달리, 엔드필드는 전략 게임처럼 서로의 패를 주고 받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적이 스킬을 쓰니, 나는 이걸로 막아야겠다"하는 식이다.
이런 양상을 위해 유저의 편의를 봐준 시스템도 있다. 스킬을 사용하면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의 '초산 공간'처럼 화면이 회색으로 바뀌고, 날아오는 투사체를 포함해 이동과 공격 등의 모든 움직임이 느려진다.
플레이어는 느려진 그 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대응 방안에 대해 궁리할 수 있다. 추가로 브레이크 시스템도 존재한다. 적의 보호막을 제거하면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추가 대미지가 들어간다.
파티 조작 방식도 독특하다. 필드에 한 번의 하나의 캐릭터만 나와있는 기존 서브컬처 게임과 달리, 네 명의 파티원 전체가 필드에 나와있다. 직접 조작하는 캐릭터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작 캐릭터 근처를 따라다닌다.
조작 캐릭터를 따라다니는 파티원들은 당연하게도 무적 상태가 아니다. 즉, 아무 생각 없이 메인 캐릭터만 조작하다보면 다른 파티원은 어느 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써주지 않으면 스스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개복치처럼 쉽게 죽는다.
나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전략은 어렵다. 공격을 피할 때 조작 캐릭터 뿐만 아니라. 나머지 파티원 위치까지 고려해 움직여야 한다. 이런 방식에는 익숙하지 않다 보니 시연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티원이 모두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기 십상이다.
■ 익숙? 진부? 오픈월드 콘텐츠의 정석
엔드필드는 탈로스II 행성의 오픈월드를 탐험하는 일종의 '정석' 같은 콘텐츠를 선보인다. 전투가 독특하다면 탐험 콘텐츠는 늘 먹는 백반 같은 느낌이다. 백반 구성도 옆 가게와 큰 차이는 없는 편이다.
먼저 '에테리움'을 수집하는 콘텐츠가 있다. 원신의 '신의 눈동자'나 명조의 '사운드박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다. 필드 어딘가에 숨겨져 있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획득해 일정 갯수를 모아 보상을 받는다.
벽 타기와 간단한 퍼즐 풀이를 이용해서 건너야 하는 필드 기믹, 맵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재돼 있는 보물상자를 열어 보상을 얻는 재미까지 있다. 평소에는 필드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상자를 까러 다니거나 퍼즐 기믹을 풀며 시간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오픈월드 게임이 사용하는 '아카이브' 시스템도 마련했다. 대신 맵 곳곳에 숨겨진 문서 형태의 아이템을 통해 스토리나 숨겨진 떡밥을 보충 설명하는 방식이다. 아카이브는 탐험이란 오픈월드 핵심 가치에 풍미를 더하는 장치로 많은 게임이 사용한다.
서브컬처 게임을 좀 즐겨봤던 관람객이라면 필드 콘텐츠에서는 늘 먹던 맛을 느낄 수 있다. 식상할 수 있지만, 영리한 결정이다. 새로움으로만 가득한 급진적인 게임은 그 나름대로 리스크가 크다.
적당히 익숙한 구조 위에 전투에서의 차별화를 꾀한 전략은 좋은 선택이다. 전투도 색다르게 재미 있고, 평소에 즐기던대로의 익숙한 콘텐츠도 있는 만큼 출시 후 서브컬처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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