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월급 뒤에 숨은 ‘표퓰리즘’으로 무너진 징집·모병체계[박성진의 국방 B컷](19)
‘2025년 병장 월급 205만원’으로 상징되는 급격한 병사 월급 인상이 부사관과 장교 모집에는 ‘독이 든 사과’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군의 인력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 한국군은 징병제 위에서 충분한 인구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온 집단이었다. 한국군은 6·25전쟁과 1953년 정전협정 시기에 형성된 병력 구조와 부대 주둔 형태를 큰 변화 없이 유지해왔다. 그런데 한국은 인구 감소의 충격으로 한정된 인구를 대상으로 군과 사회가 경쟁하는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과거와 같은 인력 수급 혜택이 군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병사라 하더라도 합당한 월급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급격한 병사의 월급 인상은 간부들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애초 한국군 인력 시스템은 징병제를 근간으로 설계돼 ‘병역의 의무’와 ‘직업으로서의 선택’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다. 병역 의무자들은 병사와 부사관, 장교 등 세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면 복무기간이 짧을수록 선호도가 높아 단기 복무 병사에 의존하는 병력 구조다.
‘제로섬 게임’ 징집
한국군의 징집·모병체계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과거 병사의 복무 여건은 좋지 않고 복무기간도 긴 편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간부 충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징집·모병의 유인조건이 바뀌었다. 병사의 처우가 급격히 개선되면서 상대적으로 부사관과 장교의 매력이 하락했다.
내년도 병사 월급은 병장 기준으로 올해보다 40만원 많은 205만원까지 오를 예정이다. 정확히는 병장 월 급여 150만원에 내일준비지원금(자산형성프로그램) 55만원을 합쳐 205만원이다. 이를 위해 2024년 대비 19% 늘어난 5조1013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병사 월급 인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대선후보 시절 공약인 ‘병사 급여 200만원’ 공약이 이행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첫해 병장 봉급이 82만원에서 130만원으로 60% 인상됐다. 올해도 165만원으로 올랐다. 내년에는 205만원으로 늘어나 병사 월급이 부사관 초임 월급과 비슷해지게 됐다.
게다가 병사 월급에는 숙식비가 포함되지 않는다. 병사 하루 밥값은 2024년 기준 1만3000원이다. 30일(한 달) 기준으로는 39만원이다. 생활관 운용비 등을 포함한 숙식 제공 개념으로 따지자면 병장 기준으로 250만원을 훌쩍 넘는다.
급격한 병사 월급 인상은 징병제를 직업군인인 간부 충원 수단으로까지 복잡하게 연계해왔던 한국군의 구조적 문제점을 폭발시킨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했다. 그 결과 군 간부들의 사기가 무너지고, 부사관 퇴직이 늘면서 그 빈자리를 신규 인력이 채우지 못해 비싼 군 장비를 놀리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야당은 이런 논란과 부작용이 있음을 알고도 병사 월급 문제에서는 애써 말을 삼간다. 현역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 입대를 앞둔 20대 남성 표를 의식한 결과다. 사실상 윤 정부가 내놓은 ‘표 포퓰리즘’ 정책에 합류한 셈이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표가 날아간다고 보는 것이다.
정치권은 병사 월급 인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애국페이’(애국이란 이름의 노동 착취) 논란을 없앴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으나, 실제 ‘공정’이라는 차원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한국군의 경우 징병률이 높은 단기 복무 병사 의존도가 높은 탓에 군의 전문성과 숙련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한국군 50만명 중 병사집단을 구성하는 30만명이 모두 징집병이다. 이런 병사들의 전투력은 모병으로 입대한 간부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애국심 차원이 아니라 전투 기술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갈수록 첨단장비를 사용하는 전투 훈련이 필요하다. 1년 6개월 근무하고 제대하는 징집병사들에게 이런 훈련을 숙달시키긴 어렵다. 1년 6개월이란 기간은 작전·경계 지역에서 숙달된 기동훈련을 하기에도 쉽지 않다. 군 전투력의 근간인 부사관의 월급이 단기 징집병들과 큰 차이가 없다면 합리적 예산의 집행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20년 전 켜진 경고등
한국군 징병 시스템에 경고등이 켜진 지는 오래됐다. 1949년 병역법 제정 이후 유지돼온 병역제도는 이미 20년 전부터 인구 감소와 함께 한계점을 향해 가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질적·양적 측면을 고려한 정책적 변화가 절실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병무청이 이를 외면하고 정치권 요구에 따른 병사 봉급 올리기와 군 복무기간 단축에 집중한 결과 징집의 균형마저 깨졌다.
한국은 징병제하에서 병역 의무자가 병사로 갈지, 간부로 갈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병사에 집중한 처우 개선이 급격하게 진행될수록 초급 간부 지원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사 복무기간이 1년 6개월로 단축되면서 상대적으로 복무기간이 긴 군 간부의 지원율이 지속 하락 중이었는데, 여기에 병사 월급의 급격한 인상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한국군은 또 현재처럼 1년 6개월 복무하는 병사집단 30만명을 유지하려면 매년 20만명을 안정적으로 징집해야 한다. 매년 병사의 3분의 2가 바뀐다는 의미로 이는 곧 숙련 병사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저출생으로 인한 병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역 판정률이 2020년까지 81% 수준을 유지하다 2021년부터 88%로 상향됐다. 억지로 현역 판정률을 높이다 보니 해마다 현역 복무 부적격자로 전역하는 병사들이 수천명씩 나온다.
병사들의 복무기간 단축과 월급 인상은 징집자원 부족 문제를 포함한 군 인력 유지 방식의 총체적 개혁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중 하나로 총체전력(Total Force) 개념의 군 인력관리 방안을 제시한다. 이는 총체적 국방인력 관점에서 군인, 민간인력, 예비군의 최적 조합을 검토하자는 얘기다. 한마디로 군 인력관리 체계의 범위를 ‘군인(Military Manpower)’에서 ‘국방인력(Defense Manpower)’으로 확장하자는 것이다. 이는 미군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밖에 징집병 외에 더 오래 복무하는 계약형 전문병사제와 여성병사제 등도 거론하고 있다. 벌써 10여 년 전부터 시범사업이라도 해야 했을 대안들이다.
문제는 징집·모병체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급격한 병사 월급 인상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대통령의 지시라는 이유로 그저 따르기만 해왔던 군 수뇌부의 무책임한 태도다.
참고로 내일준비지원금을 빼고 받는 병장 월급 150만원은 생활비가 아닌 용돈 개념에 가깝다. 병사들은 휴가·외출을 제외하고는 숙식이 제공되는 영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군에서는 병사들이 월급을 유용하게 적립하거나 사용하도록 금융교육도 해야 한다. 일부 병사들의 경우 병영 내에서 투기성 강한 가상자산(코인) 투자나 불법 온라인 도박까지 하다 문제가 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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