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국민만을 위한 ‘새판’ 짜야[메디칼럼](43)

2024. 11. 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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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대한의학협회 회장이 지난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의·정 협의체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제 곧 50대다. 전에는 신경 쓰지 않던 것들, 특히 건강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 긍정적인 태도는 아닌 듯하나 그런데도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테니스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치기로 하고 석 달치 비용을 먼저 냈다. 하지만 지금은 2주째 못 가고 있다. 한심하다. 그런데 나는 왜 운동을 시작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테니스를 등록한 이유는 최근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목격해서이지 싶다. 한 달 전쯤 나와 같은 성형외과 의사인 선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하다가 돌아가셨다. 평소에 큰 지병이 없었기에 빠른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들었다. 불과 며칠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친한 지인의 아버지가 강원도의 한 병원에서 위암 수술 후 소장 폐색이 왔다. 강원도에서는 대처할 병원이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연락이 나한테도 왔다. 수소문 끝에 가까스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급 규모의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주변 대학병원 외과 교수들에게 물어보니 강원도에서는 위암 수술 후 소장 폐색 환자를 받을 병원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약 한 달 전에 의사 후배가 갑자기 죽었다는 부고 문자를 받았다. 스팸인가?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다음 날 장례식장에 들렀다. 심정지 이후에 조치가 늦었다는 얘기 정도만 들었다.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이지 않은가. 어찌 이럴 수가.

누가 전공의들에 돌을 던지랴

올해 2월부터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을 떠났다. 최저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 가면서 필수의료에 종사했던 이른바 ‘MZ세대’ 의사들이 의사 수를 지금보다 60% 늘린다는 얘기를 듣고 갈등을 겪으면서 떠났다. 애초에 ‘핑크빛 미래’가 없는 필수의료 담당 전공의들이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나중에 보상이 없는데 지금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용인될 수 없다.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면 되나? 당연히 안 된다. 그러므로 국민이 쉽사리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맞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프레임을 씌운다. 그런데 아니다. 누구도 부정 못 하는 진리가 하나 있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 원가의 70~80%만 보전받는 사업이 지속될 수 있나. 현재 우리나라 의료가 그렇다. 의사의 사명감, 희생으로 유지될 수 없다.

정부는 지역의료 활성화, 의료인력 확충, 의료 사고 안전망, 보상체계 확충을 말한다. 누가 이 개혁에 반대할까. 아무도 안 한다. 의사도 안 하고, 환자도 안 하고 국민 누구도 반대 안 한다. 의료 인력 확충 당연히 해도 된다. 그런데 현재도 필수의료로 안 가는데 의료인력 확충을 근거 없이 60% 이상을 한다고 하니까 설득이 안 되는 것이다.

원가를 보전받지 못하는 의료수가 체계는 이제 더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대학병원은 최저 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젊은 MZ세대 의사들의 고혈로 지탱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지게 놔둬서는 안 될 것이다. 1차 의료기관인 의원이 중심인 의료수가 체계, 종합병원이라도 가벼운 환자를 많이 봐서 수익을 남기는 이러한 수가 체계는 무너뜨려야 한다. 대형병원들은 중환자 중점 병원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 우선해 국민 건강을 생각하자

쓸데없는 가벼운 병세에 돈을 지원해주지 말자. 중증 외상 의료, 중환자 진료에 재원을 투입하자. 그렇게 돼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물론 1차 의료기관인 의원은 처음에는 수입이 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국민은 1차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적정한 돈을 지급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는 것을 더 환영할 것이다. 그러한 구조로 가야 한다. 불필요한 돈, 불필요한 진료가 너무 횡행한다. 왜 그동안 그것이 안 됐나. 당연히 정치가 끼어들어서 그렇다. 표로 직결되니까 그렇다. 이제는 결단하자. 전공의들은 환영할 것이고, 대학병원은 살아날 것이고, 국민은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고, 불필요한 진료와 재원 낭비가 사라질 것이다. 필수의료가 살아날 수밖에 없다.

다음에 짚어봐야 할 문제는 신뢰의 문제다. 지금은 소통 채널이 전무하다. 심지어 거짓말도 난무한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 같다. 의료계와 정부의 협상 테이블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 둘 다 문제다. 명분 쌓기용 만남은 협상도 아니고, 토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라도 만나자. 그런데 문제가 있다. 현재 정부의 의사소통 구조는 하향식이라 정부 관료들의 목소리도 올라가지 않고, 의사들의 목소리도 올라가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다른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의료는 위정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의료현장의 문제는 우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서민들은 지금 아프면 안 된다. 아프면 무조건 손해다. 의협이 잘못했고, 정부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신뢰 없는 관계만을 이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정치의 논리로 흘러서 그렇게 됐다. 의협 회장이 되고 나서 정치하고, 정치인들은 표를 위해서 올바른 구조로 개혁을 안 하는 구조가 수십 년간 지속했다. 솔직히 의·정 갈등은 실마리조차 찾기 어렵다. 우울하지만 내년까지 갈 것이고, 새판이 짜일 가능성이 크다. 제발 새판에서는 국민만을 위한 판을 짜길 바란다. 의사를 위한 판도 아닌 정치를 위한 판도 아닌 의사, 정치 모두를 포함한 국민을 위한 판 말이다.

다시 정리를 조금 더 해드리겠다. 수가를 높여라. 필수의료 수가를 높여라. 의협은 극소수의 부도덕한 의사들을 살리려고 하지 말아라. 과감하게 칼을 휘두르자. 국민에게 진심을 보여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 밥그릇 챙긴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건 의협이 잘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표를 위해서 움직이지 말아라. 지금은 너무나도 헷갈리고 어려울 때다. 이럴 때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위정자들도 그렇고, 의협도 그렇고 국민에게 다가가자. 그리고 진짜 정의가 뭔지 국민에게 잘 알리자.

박병호 아이호성형외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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