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왕실서 남편과 반성 목소리 냈던 최고령자 유리코 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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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 최고령자 미카사노미야 유리코 비가 15일 별세했다.
유리코 비는 히로히토 일왕의 막냇동생인 미카사노미야 친왕과 1941년 혼인했다.
아사히신문은 1945년 당시 청년 장교들이 "전쟁을 끝내면 안 된다"고 반발했으나, 미카사노미야 친왕과 유리코 비 부부는 강경하게 전쟁 종식 입장을 견지했다고 전했다.
한편 유리코 비 별세로 일본 왕실 구성원은 16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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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은 기자 = 일본 왕실 최고령자 미카사노미야 유리코 비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유리코 비는 올해 3월 뇌경색과 폐렴 등으로 입원해 치료받았으나 병세가 악화했다. 결국 유리코 비는 이날 오전 6시 32분 도쿄도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유리코 비는 히로히토 일왕의 막냇동생인 미카사노미야 친왕과 1941년 혼인했다. 미카사노미야 친왕은 2016년 별세했다.
미카사노미야 친왕은 일본이 벌인 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 인물이다. 그는 생전 "일본군의 폭행이 지금도 거듭 매우 부끄럽고 마음에 걸린다"고 발언했다.
유리코 비 역시 남편의 뜻을 따랐다. 이들 부부는 일본이 1945년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청년 장교들의 반발에 맞서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1945년 당시 청년 장교들이 "전쟁을 끝내면 안 된다"고 반발했으나, 미카사노미야 친왕과 유리코 비 부부는 강경하게 전쟁 종식 입장을 견지했다고 전했다.
유리코 비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격론이 벌어져 당장이라도 총알이 오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회상했다.
유리코 비는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 동안 사회복지법인 '모자애육회' 총재를 맡아 출산·육아 관련 종사자들을 지원했다.
이들 부부 슬하에는 3남 3녀가 있으나 아들 3명은 모두 사망했다.
한편 유리코 비 별세로 일본 왕실 구성원은 16명으로 줄었다.
1derlan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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