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부의 사적 이익이 민주공화국의 공적 이익 훼손 [쓴소리 곧은 소리]
지금이 마지막 기회…‘공정과 상식’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무너질 수도
(시사저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어려울수록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대통령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집권했던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초심으로 돌아갈 때 국민은 희망을 갖게 된다. 지금 윤 대통령은 야권의 퇴진 압박 속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몰고 올 후폭풍 등 내우외환 속에 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 하는 마음가짐으로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고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야권은 명태균·김건희의 공천 개입 및 국정농단 의혹을 주장하며 연일 대통령 퇴진을 압박한다. 윤 대통령은 11월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으로 머리를 숙이긴 했으나 민심은 차갑다. 윤 정부 전반기에 대한 국민 여론과 전문가의 평가는 박하다.
한국갤럽이 11월5∼7일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17%, 부정평가는 74%로 각각 집계됐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김건희 여사 문제'(19%)가 가장 많다. 탄핵을 받기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관련 대국민 사과를 했던 2016년 10월말 지지율이 17%였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윤 대통령도 탄핵 전야의 위기에 빠졌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조사는 10월31일 민주당에 의해 공개된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 간 '공천 개입 의심' 육성 녹음이 전면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윤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윤 대통령은 어쩌다가 위기에 빠졌을까? 핵심은 초심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초심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게 생각되는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급할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와닿는다.
국민은 현재 마지막 심정으로 윤 대통령의 근본적 변화와 김 여사 문제의 완전 해결, 인적 쇄신, 내각 쇄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겸허하게 국민에게 응답하는 게 순리다. 윤 대통령도 자신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11월7일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김건희 여사가 바르게 처신하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남은 임기에 초심으로 돌아가 쇄신에 쇄신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여사 대외 행보와 관련해선 "사실상 중단해 왔고, 그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이제 중요한 것은 민심에 맞는 수준으로 구체적이고 속도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정책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고 연금, 의료, 노동, 교육 '4대 개혁'에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와 같은 낮은 지지율로는 국정동력이 생기지 않아 4대 개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지금 국정동력을 살리기 위한 특별한 묘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실망하고 분노한 민심이 가라앉고 누그러질 때까지 최선의 변화를 꾀하는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자기 잘못을 초심의 관점에서 되짚어보고, 재발 방지 약속이 국민에게 진심으로 체감되도록 환골탈태(換骨奪胎)를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결국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국정동력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민주공화국을 수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대통령으로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대통령 부부의 사적인 이익이 민주공화국의 공적 이익을 훼손하거나 훼손하도록 방치한 직무유기의 잘못이 있다고 본다.
첫째, 윤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집권여당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음성녹취록'을 남긴 만큼 공사 구분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특검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수사까지 했던 윤 대통령으로선 누구보다 더 엄격하게 공사 구분을 해야 할 공인 의식이 요구된다. 윤 대통령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라는 자신의 발언이 '공천 개입'이 아니라 '단순 의견 개진'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국정기조 전환' 골든타임 끝나가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명분이 됐던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고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처음부터 충실히 이행했더라면 이런 공천 개입 의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당정 관계, 국민참여 경선제 등 개혁 조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천권 장악'과 '의원 줄세우기'의 터전인 '중앙당 있는 정당 체제'를 타파하고 '원내 정당 체제'를 도입하는 게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내정당 체제'의 전제조건인 상향식 공천제도로 '국민참여 경선제'나 '미국식 예비경선제'가 도입됐다면, 선거 여론조사 조작과 영부인의 공천 개입 의혹으로 상징되는 '명태균 스캔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식 예비경선제도 도입은 그동안 수많은 잡음으로 얼룩진 여론조사 공천 방식을 막고 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통령을 돕는 선거운동원이자 당선 후에는 1등 참모로서 사실상 공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영부인을 아무런 법적 보호 조치 없이 사인으로 방치한 잘못이다. '제2부속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법'과 같은 '대통령 배우자법'을 만들지 못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에 대한 후속 대처가 필요하다.
셋째, 윤 대통령의 법리적 설명조 화법과 독선적 소통 방식도 불통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잘못이다. 대통령의 화법을 공감형 소통법으로 바꾸는 게 가장 빠른 변화의 길이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윤 대통령은 독선, 독단, 아집이 몸에 밴 것 같고 본인이 전부 이야기를 독점한다"며 "역지사지가 전혀 안 되는 모습"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각범 명예교수는 "매우 정제된 언어로 국민에게 말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비된다"며 "대통령의 언어는 정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무엇을 바꿔야 할까? 떠난 민심을 되돌리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국정기조와 리더십 변화 등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윤 대통령과 여당은 더 낮은 자세로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국정에 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은 중산층으로 올라서고 중산층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더 늦기 전에 국정기조 전환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다 소용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 '중산층 재건주의'를 기조로 '중도실용 내각 구성'을 국정 쇄신으로 천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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