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는 ‘kal-guksu’인가, ‘knife-cut noodle’인가? [말록 홈즈]

2024. 11. 1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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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말록 홈즈 42화]

칼국수가 부엌칼로 만든 국수인지 추리하는 셜록 홈즈의 모습을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만들어 보았다. 오늘은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요즘 퇴근 후 듣는 수업이 있습니다. 수업은 여덟 시고, 교실 인근 도착 시간은 대략 7시 전이라, 종종 혼밥을 뜨곤 합니다. 어제 메뉴는 칼국수였습니다. 시간과 가격 모두 부담 없어, 가볍게 들기 좋습니다. 국물향이 은은한 소박한 밥상이 자리잡고,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습니다. 또 다시 어원병이 도집니다.
홍대 인근 한식집 ‘두리반’에서 먹은 담백하고 깔끔한 칼국수. 뒷줄 오른쪽부터 김치, 깍두기(착한 사람 눈에도 안 보임), 숙주나물
칼국수를 영어로 설명하려면 어떻게 표현할까요? 칼로 자른 면이니 ‘knife-cut noodle’일까요? 국물로 끓인 뜨끈한 국수이니 ‘noodle soup’일까요? 아니면 우리 고유의 음식이니, 김치를 ‘kimchi’나 ‘gimchi’로 쓰는 것처럼 ‘kal-guksu’로 소개하는 게 나을까요? 제 말의 핵심은 “우리 전통 음식인 칼국수의 영어이름을 짓자”가 아닙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영어로 칼국수를 소개하는 표현을 생각해보자는 제안이죠.

“kal-guksu is one of the most popular noodle dish . The noodle is made by knife-cutting.”

단어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칼국수는 ‘칼+국수’로 구성됐는데, 여기서 칼은 면을 썬 도구를 의미합니다. 간혹 칼을 ‘머리카락’이나 ‘가락국수’처럼 가락으로 해석해야 한다 의견들도 있습니다. ‘카락/가락’이 ‘가르다’에서 온 말이니, 칼로 썰고, 자르고, 가른다는 본질은 같은 듯 보입니다. 중국어사전에서는 ‘도절면(刀切面: 칼 도, 자를 절, 국수 면)’으로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칼로 썬 국수입니다. 이름 속 칼의 본질로 해석하면 영어로 소개할 때는 ‘knife-cut noodle (soup)’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칼국수 앞에 배추김치가 보입니다. 한식에는 곁들임 음식으로 항상 김치가 나오는데, 면요리와는 찰떡궁합입니다. 김치의 옛말로 ‘디히’라는 말이 많이 언급됩니다. 디히는 ‘소금에 절인 짠 나물’을 뜻하는데, 디히의 어근인 ‘딯’을 ‘가라앉히다’로 해석합니다. ‘소금물에 담가 가라앉힌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우리나라에 고춧가루가 들어온 시기는 대략 16세기이니, 이전의 채소발효 음식들은 주로 소금에 절여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가 보통 ‘짱아치’로 읽는 ‘장아찌’의 원말은 ‘장앗디히(장아 + ㅅ + 디히)’로 ‘장에 절여 발효시킨 짭짤한 반찬’을 의미합니다. 김치를 원말 ‘디히’의 의미로 해석하면, ‘pickled vegetable salad’가 적합하지 않을까요?(pickle은 ‘소금물’을 뜻하는 중세 네덜란드어 ‘pekel’에서 왔습니다) 의견 댓글 부탁드립니다.

배추김치 옆으로 대표적인 무김치로 ‘깍두기’가 있습니다. “깍둑” 소리나게 썬 무김치’로 해석합니다. 무를 도마 위에 올려 네모나게 자르면 “깍둑” 소리가 납니다. 의성어 ‘깍둑’에 ‘~한 것/행위자’인 ‘이’가 결합한 말입니다. 본말은 ‘깍두기 김치’입니다. 모든 말이 지역과 역사를 넘어 편한 발음과 짧은 음절로 바뀌는 현상이 적용된 듯 보입니다. 영어사전에는 ‘kkakdugi’와 ‘sliced[cubed] radish kimchi’라고 나오는데, 원말의 의미를 살리면 ‘kakduk sounded sliced radish’가 가장 적확할 것 같습니다. 무를 뜻하는 영어단어 ‘radish’는 인도유럽조어로 ‘뿌리/가지’를 뜻하는 ‘wrād’에서 왔다고 합니다.

숙주나물도 보입니다. 숙주란 ‘녹두(菉豆: 푸를 록, 콩 두. 초록 콩)에서 나온 싹채소’를 뜻합니다. 옛 문헌에 ‘두아채(豆芽菜: 콩 두, 싹 아, 나물 채)’와 ‘녹두길음[菉豆長音: 푸를 록, 콩 두. ‘長音’은 ‘길음(기름: raising)’의 이두식 표기]으로 소개됩니다. 숙주의 민간어원으로 쉽게 변질되어 조선시대 변절자 신숙주에 대한 냉소와 조롱으로 붙은 이름이라는 유래설이 있습니다. 숙주는 찧어서 만두소에도 넣기도 하는데, ‘짓이겨 죽일 놈’이란 증오의 의미로도 쓰였다네요. 하지만 문헌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고령신씨인 신숙주의 후손들은 숙주나물을 녹두나물로 부르고, 제사상에는 숙주나물을 올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숙주’는 무슨 뜻일까요? 어두운 시루 안에서 잠자듯 살아서 ‘宿住: 잘 숙, 살 주)’란 의미로 지은 낱말이, 신숙주를 만난 거면 재밌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상상입니다. 중국어로는 ‘绿豆芽(푸를 록, 콩 두, 싹 아)’라고 부릅니다. 본질이 ‘푸름’입니다. 영어로는 ‘mung-bean sprouts’라고 부릅니다. 녹두 ‘mung’이 산스크리트어와 힌디어에서 왔다는데, 그 뜻이 불명확합니다. “콩이 콩이지 무슨 뜻이 있겠어?”라는 핀잔 섞인 대답을 들을 것만 같습니다.

어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되고 어렵습니다. 이렇게 칼국수 밥상에 함께한 음식들의 이름 유래를, 상상 섞어 풀어봤는데요. 댓글로 다른 해석과 다양한 지식들을 함께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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