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전기차 보조금 폐지”… 韓 전기차·배터리 손실은
배터리 제조 보조금 있어도 수요 줄면 타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검토하면서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구매자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현지 공장 완공을 기다리던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단행했던 10조원 규모의 투자 의미가 무색해졌고, 배터리 업체들도 보조금 폐지로 전기차 수요가 줄면 손실을 피할 수 없다.
14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석유·가스회사 ‘콘티넨털 리소스즈’ 창립자인 해럴드 햄과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이끄는 트럼프 인수위 에너지정책팀이 IRA의 세액공제 혜택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려면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해 예산을 절약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IRA는 미국에서 전기차를 사는 사람에게 2032년까지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의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우군이자 테슬라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도 전기차 보조금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머스크는 지난 7월 테슬라 실적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면 테슬라도 약간의 피해를 볼 수 있지만, 경쟁사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라며 폐지가 장기적으로는 테슬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美 공장 기다린 현대차, IRA 30D 폐지 시 투자 의미 퇴색
트럼프 인수위가 폐지를 검토하는 IRA 조항은 30D로 추정된다. 전기차를 사는 사람이 보조금을 최대로 받으려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배터리를 장착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대차는 북미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22년 10월부터 76억달러(약 10조7000억원)를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3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는 HMGMA 완공에 따른 세제 혜택을 받기 전까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손실을 감수하며 자체적으로 구매자에게 IRA 세제 혜택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올해 1~7월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모터 인텔리전스 집계)은 10.2%로 테슬라(50.8%)에 이어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6.8%)와 비교하면 3.4%포인트(P) 늘었다.
HMGMA는 지난달 시범 가동을 시작하며 아이오닉5를 생산하고 있다. IRA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구매자에게 7500달러의 보조금 혜택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내년부터 연간 30만대를 모두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IRA에 따른 보조금 규모만 3조1700억원에 달한다. IRA 보조금이 폐지되면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인센티브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이 경우 수익성은 악화한다.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지면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배터리 업계도 타격이 예상된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늦춰지면, 배터리 판매량이 감소하고 공장 고정비용 부담 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체들은 최근 공장 가동률이 낮아져 수익성이 나빠졌다. 올해 3분기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생산설비 가동률은 59.8%로, 전년 동기(69.3%)보다 감소했다. SK온도 3분기 국내외 중대형 전지 생산설비 평균 가동률이 46.2%로 전년 동기(87.7%) 대비 급감했다.
◇ IRA 45X도 폐지되면 수십조원 배터리 보조금 사라져
트럼프 정권이 배터리 생산업체 등에 보조금을 주는 IRA 45X 조항의 폐지를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국내 업체들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십조원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IRA 45X 조항은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셀은 1킬로와트시(㎾h)당 35달러, 모듈은 1㎾h당 10달러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혜택을 주는 내용이다. 지난해부터 지급된 AMPC는 배터리 기업의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3분기 AMPC로 4660억원을, SK온은 608억원을 각각 수령했다. 두 기업 모두 올 3분기에 흑자를 기록했지만, AMPC를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였다.
현재까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수령한 AMPC 규모는 총 2조6725억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테네시·미시간·오하이오주 공장 등에서 총 1조7795억원을 수령했고, SK온이 조지아주 공장 생산으로 8281억원을 받았다. 삼성SDI는 다른 국가에서 생산한 셀을 미시간주 공장에서 팩·모듈로 조립한 물량에 대해서만 소규모(649억원) 보조금을 받았다. 삼성SDI는 인디애나주에 스텔란티스와 합작 건설 중인 셀 공장이 12월부터 가동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AMPC를 받게 될 전망이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IRA 혜택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직접 또는 완성차 업체와 합작 법인을 만드는 형태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향후 AMPC 기대 액수도 수십조원대로 늘어날 전망이었다. 그러나 IRA 45X 조항이 폐지되면 합작 법인 등에 대한 유인이 사라져 계획된 투자가 줄줄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IRA 축소로 전기차 성장이 둔화할 경우 자동차 업계는 내연기관차·하이브리드차 등으로 포트폴리오 조정이 가능하지만,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수요에만 76.4%를 의존하고 있어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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