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청록집, 푸름의 기록이 모여드는 곳
편집자주
600만 소상공인 시대, 소상공인의 삶과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영업, 특히 요식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의 줄폐업이 이어지면서 요식업계가 위기에 빠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려운 상황 속, 본인만의 개성을 부각해 요식업 브랜드를 전개하는 소상공인의 사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부산에 위치한 청록집 역시 그 중 하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청록집’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강민재입니다. 청록집은 다양한 주류와 음식을 파는 곳입니다. 식사를 하시기에도 괜찮고, 2차를 간단히 즐기시기에도 좋은 매장입니다. 소모임도 많지만 특히 혼자 오시는 손님도 끊이지 않습니다.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혼술을 하러 바에 앉으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청록집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푸를 청(靑), 기록할 록(錄), 모을 집(集). ‘푸름의 기록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청록’이란 ‘모든 것’을 뜻하는데요. 사람과 꽃, 나무, 길냥이들과 서점에 진열된 책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모든 사물과 비정형의 것들과 같이 ‘피고 지는 모든 것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청록집만의 특징이나 장점이 있다면 뭘까요?
“오픈 후 오고 간 방명록의 기록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겨울이 어울리는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 ‘서로에게 진솔해지는 곳’, ‘음식과 술이 맛있고 좋은 향기가 피어 있는 곳’, ‘혼자 와도 부담이 없는 곳’, ‘음악에 따라 슬퍼진다거나 때로는 사랑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저마다의 감상이 청록집의 특징인 듯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청록집이 가진 모습이라 생각해요. 소란스러운 각자의 일상 속, 언제나 청록집은 푸른 것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공간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창업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졸업은 못 했지만 대학생 때는 순수 미술을 전공했어요. 쉽지 않은 형편 덕분에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장사를 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제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나만의 가게,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탓에 주방일부터 카페, 홀 서비스, 반찬가게, 술집, 한식 레스토랑 등 많은 곳에서 일해왔습니다. SK그룹에서 지원하는 청년 직업 교육 프로그램인 SK NEW SCHOOL에 입학해 1년간 요식업과 관련해 공부하고, 3년 정도 서울에서 일을 하다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기도 했고요. 부산에 내려와서는 파티시에로 근무하다가 창업하게 됐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창업 비용을 대출로 시작하다 보니, 정해진 예산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했는데요. 빡빡한 예산 탓에 준비가 원활치 않았던 지점이 어려웠던 듯합니다. 차도 없이 사방팔방 뛰고, 대중교통으로 필요한 물건을 중고로 사기 위해 자주 다녔어요. 한번은 어떤 분이 ‘학생 같은데 이런 접시 가져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시며 ‘그냥 줄 테니 가져가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버스 타러 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창업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창업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와 주셨던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기억에 깊이 남아요. 또 매장을 찾아 주시는 분들이 방명록에 써놓고 가시는 글을 읽을 때, 그 손님이 앉아 계셨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해요. 쉽게 찾기 힘든 매장 위치 때문에 첫 시작이 쉽진 않았어요. 지금은 그나마 고객들의 재방문, 입소문 덕에 좀 나아졌지만요.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땐, 종교도 없는 제가 어딘가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갚아야 할 마음이 너무 많습니다, 제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세요’ ‘청록집이 사랑받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면서요.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까지 닿는 발걸음이 지금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앞으로 청록집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청록집이라는 이름의 의미, ‘푸름의 기억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그 뜻처럼 모든 브랜드(청록靑綠)를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왜 해야(브랜드를 모아야) 하나?’에 대한 정의는 아직 내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부산 온천장 ‘모모스커피’가 4평 창고에서 시작해 부산을 대표하는 로스터리 카페로 성장하며 커피와 부산을 결합한 것처럼, 청록집을 로컬 대표 음식점으로 키우며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꿈이 크다 말씀 하시겠지만, 목표와 바람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고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책을 읽는 일이란 책의 입장에서는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일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랑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메뉴판에 함께 걸려있는 '책의 말'이라는 시와 함께 청록집의 슬로건은 "READ ME, MY DEAR"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이 온전히 읽히고, 항상 사랑이 곁에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장은진 창업 컨설턴트 ari.maroon.c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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