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even)한 리뷰] ‘글래디에이터2’ 리들리 스콧의 60년 장수 비결
김인구 문화부장이 직접 쓰는 ‘이븐(even)한 영화 리뷰’ 시작합니다. ‘이븐’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가 평가를 하면서 자주 사용해 화제가 된 단어입니다. 영어 이븐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안 셰프의 이븐은 ‘골고루, 균일하게’의 의미인데요. 영화의 연출, 연기, 스토리를 ‘골고루 잘 다룬’ 리뷰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울러 영어 비교급을 강조할 때 쓰는 ‘훨씬’의 의미처럼 ‘훨씬 더 세련되고 재미있는’ 리뷰를 써 보겠습니다. 보편적이면서도 색다른 관점에서,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을 좋아한다. 시각적이든 정서적이든 충격을 주는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지 않았나. 최고의 SF(과학소설) 공포 시리즈로 발전한 ‘에이리언’(1979)은 말할 것도 없고, SF 판타지 ‘블레이드 러너’와 여성 로드 무비 ‘델마와 루이스’(이상 1993), 전쟁 극화 ‘블랙 호크 다운’(2002), 휴먼 SF ‘마션’(2015), 실화 바탕의 스릴러 ‘하우스 오브 구찌’(2022)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거의 모든 영화 장르를 섭렵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1965년 단편 ‘자전거 소년’으로 데뷔한 이후 60년간 이렇게 꾸준하게, 그것도 최정상에서 활동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자 축복 같다.
의심할 여지 없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스콧 감독은 이제 세계 영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연출자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1928∼1999) 감독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큐브릭 감독은 SF, 전쟁, 스릴러, 공포 등 대부분의 장르에서 현대영화의 ‘교본’이 될만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도 그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로마 검투사의 액션을 그린 ‘글래디에이터’(2000)도 스콧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다. 또한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액션 영화에 영감을 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2004),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2007), 미국 인기 드라마 ‘스파르타쿠스’(2010) 등은 ‘글래디에이터’류(流)로 분류된다.
13일 전 세계에서 최초로 개봉한 ‘글래디에이터2’는 스콧 감독이 1편 이후 24년 만에 만든 속편이다. 2∼4년도 아니고 거의 한 세대(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뒤에 나왔으니 굳이 영화적으로 가상의 시간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 2편의 시간적 배경은 영웅 막시무스(러셀 크로)가 죽고 나서 20여 년이 지난 후. 지금보다 18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실제 경과한 시간만큼은 같다. 막시무스를 대체하는 주인공은 하노(폴 메스칼)다. 그는 로마에 항거하다 붙잡혀 노예 검투사로 전락해 콜로세움에서 매번 죽음의 대결을 치른다. 그런데 간간이 막시무스를 연상시킨다. 힘과 영리함에서 보통내기가 아니다. 실은 하노는 막시무스의 아들이다. 막시무스가 사랑했던 공주 루실라(코니 닐슨)와 사이에서 태어난 ‘황제 혈통’ 루시우스다. 속편에서 드러나는 출생의 비밀인 셈인데 다소 뻔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전체적인 액션의 스펙터클을 방해하지는 않는 것 같다. 뭐 그동안 워낙 얽히고설킨 막장 드라마가 많았으니 이 정도쯤은 예상했다고 할까.
그보다는 전편을 뛰어넘는 스케일에 먼저 눈이 간다. 비주얼적으로는 입이 떡 벌어지는 게 사실이다. 고대 로마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도시 풍경과 콜로세움,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강렬한 충돌, 그리고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 넣고 하는 살라미스 해전은 ‘설마 진짜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을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화려하고 장대하다.
막시무스도 실존인물이 아니었던 만큼 2편에서 갑자기 정밀한 역사 고증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루시우스에게 폭정을 일삼는 로마의 쌍둥이 황제 카라칼라와 게타, 그리고 천하의 권모술수를 발휘해 권력의 정점을 노리는 무기상 마크리누스(덴절 워싱턴)의 실존 여부는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카라칼라와 게타, 마크리누스 모두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캐릭터의 성격이나 태도는 많이 다르다. 카라칼라는 인정사정없는 폭정의 황제로 묘사되지만 로마의 정복 전쟁을 잘 이끈 측면이 있고, 마크리누스는 무기상이라기보다는 카라칼라의 근위대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스콧 감독이 “로마의 냄새가 날 정도로 디테일 하나까지 고증했다”고 했으나 그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되, 때로는 예술적 해석을 더 긴요하게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서 국내 미디어의 리뷰에선 “비주얼은 최고인데, 서사는 느슨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비주얼은 다들 인정하는 것이고, 서사는 역사적 고증이 무리한 부분을 들어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론 막장 드라마가 훨씬 매력적이고 긴장되는 법. 가상의 인물과 상황이 없었더라면 ‘글래디에이터2’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짧지 않은 148분의 러닝타임이 비교적 후딱 지나간다. 역사적 고증에서 아쉬운 걸 빼면 액션의 쾌감과 픽션의 판타지가 나쁘지 않다. 영국 BBC는 별 5개 중 4개를 주면서 “올해 최고의 팝콘 무비”라고 평했다. 권력의 암투까진 아니지만 권력의 흥망성쇠에 따라 변하는 개인의 운명과 세태도 엿볼 수 있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 개봉 이틀간 누적 관객수 12만4328명. 청소년관람불가.
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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