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쏘아올린 불씨 타고 과열되는 프로야구 FA시장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올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가 예상외로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FA시장이 그 첫 단계다. 시작부터 놀랐다. 한화 이글스가 KT 위즈 심우준(29)에게 50억원을 안겼다. 유격수 심우준의 통산 타율은 0.254. 2015년 데뷔 이후 9시즌 동안 3할 타율을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다. 출루율은 올해(0.337)가 가장 높았다. 통산 홈런도 31개뿐이었다. 수비가 준수하고 시즌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할 만한 빠른 발을 가졌으나 팬들은 의아했다. 한화에는 유격수 자리에 FA를 선언한 하주석을 비롯해 이도윤이 있다. 심우준의 영입으로 이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한화의 FA '쇼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올 시즌 KT 3~4선발로 뛴 엄상백과 4년 78억원에 계약했다. 엄상백은 LG 트윈스 소속으로 FA를 선언한 최원태와 함께 올해 FA시장 투수 최대어로 평가받았다. 타고투저의 영향으로 선발 투수 부족에 시달리는 구단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통산 성적이나 나이 등은 최원태가 더 매력적이었으나 최원태는 FA A등급 선수라는 게 핸디캡이었다.
최원태를 영입하려는 구단은 LG에 보호 선수 20명 외 1명의 선수와 직전 연도 연봉의 200%, 혹은 전년도 연봉의 300%로 보상해야만 한다. 반면 엄상백은 B등급 선수로, 보상 규모가 보호 선수 25명 외 1명의 선수와 직전 연도 연봉의 100%, 혹은 전년도 연봉의 200%였다. 사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팀내 21번째 선수를 내주느냐, 26번째 선수를 내주느냐의 차이가 크다. 내부 출혈을 줄일 수 있어 엄상백에게 관심을 쏟는 구단이 꽤 있었다.
가을야구 절박한 한화, 공격적 투자
한화는 심우준·엄상백 영입으로 일찌감치 외부 FA 선수 영입을 마감했다. 올해는 FA 신청자가 20명이어서 각 구단은 최대 2명까지만 외부 FA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 한화는 이제 팀내 유일한 FA인 하주석과의 협상만 남겨놨다. 채은성(6년 최대 90억원), 안치홍(4+2년 최대 72억원) 등 최근 3년간 가장 공격적으로 외부 FA 선수를 영입했던 한화였다. 이태양(4년 25억원), 오선진(1+1년 4억원)을 비롯해 내부 FA였던 장민재(2+1년 8억원), 장시환(3년 9억3000만원),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류현진(8년 170억원)에게 안겨준 돈까지 한화는 최근 3년간 무려 500억원이 넘는 돈을 스토브리그에 쏟아부었다. 가히 오프 시즌 '큰손'이라고 하겠다.
한화의 공격적 투자에 이유는 있다. 한화는 올해까지 15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단 한 번(2018년)밖에 진출하지 못했다. 암흑기가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전략을 세워봤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사령탑 교체 또한 잦아 한화는 최근 3년 동안 매해 시즌을 마무리한 감독이 모두 달랐다. 그만큼 절박하다고도, 조급하다고도 할 수 있다. 가뜩이나 한화는 내년에 새로운 구장으로 이사를 간다. 1만2000석의 좁은 한화생명이글스파크와 작별하고 2만 석 이상의 베이스볼 드림파크에 새 둥지를 튼다. 이글스 구단 창단 40주년을 맞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2022 시즌 10위, 2023 시즌 9위, 2024 시즌 8위였던 한화는 김경문 감독과 더불어 '성적'이 필요하다.
한화가 거세게 댕긴 불씨로 FA시장은 훨훨 타올랐다. 심우준에게 최대 46억원을 베팅했음에도 한화에 뺏긴 KT는 내년이면 만 35세가 되는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허경민과 4년 최대 40억원에 계약했다. 허경민은 2020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어 두산과 4+3년 최대 85억원에 계약했으나 3년 20억원의 계약액을 포기하고 FA시장에 나왔다. 총액만 놓고 보면 몸값이 2배 올랐다. 심우준 이적에 따른 나비 효과다.
디펜딩 챔피언이었으나 고우석(미국 진출), 이정용(입대) 등의 이탈로 불펜이 헐거워져 정규리그 3위로 떨어진 LG 또한 마운드 보강을 위해 FA시장에 참전했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12번째 우승에 이바지한 불펜 투수 장현식과 4년 52억원에 계약했다. 장현식의 경우 KIA를 비롯해 LG·삼성 등이 영입 경쟁을 하면서 "40억원대 총액으론 못 잡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앞서 계약한 엄상백에게서 보듯 타고투저 때문에 투수들 몸값이 치솟은 영향이 컸다. 2023 시즌을 8위로 마감한 뒤 공격적으로 불펜 투수를 영입해 올해 정규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삼성의 예도 있었다. 가뜩이나 장현식은 엄상백과 똑같이 FA B등급 선수였다. 보상금과 별도로 팀 26번째 선수를 내주면 된다.
'천만 관중'과 샐러리캡 한도 증액 영향도
롯데에서 FA 자격을 얻은 김원중과 구승민이 의외로 시장에서 인기가 없던 이유는 이들이 FA A등급이었기 때문이다. 21번째 선수를 내주면서 영입할 만큼의 매력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엄상백보다 한 살 적은데도 의외로 시장 반응이 차가웠던 최원태 또한 A등급이다. 김원중·최원태 등이 B등급이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사실 이번 FA시장의 가장 큰 수혜자는 최정이었다. 1987년생으로 내년이면 38세가 되는 최정은 소속팀 SSG 랜더스와 무려 110억원(계약금 30억원, 연봉 총액 80억원)에 계약했다. 기복 없이 꾸준했다고 하더라도 1차(4년 86억원), 2차(6년 106억원) 때보다도 많이 받았다. 3차 FA 최고액으로, 최정은 KBO리그에서 FA 계약으로만 총 302억원을 벌게 됐다. 역대 최고치다.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해도 타고투저의 영향이 없지 않다. 최정의 최대 강점은 홈런이고, 자동볼판정시스템(ABS) 도입과 공인구 반발계수 상승으로 SSG 홈구장인 인천 랜더스필드는 다시 '홈런 공장'이 된 터다. SSG는 2028년 청라돔 시대를 열게 되는데 이때 구단의 상징적인 선수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구단마다 다년계약이 늘면서 현재 FA시장에는 준척급 정도의 선수만 매물로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FA시장에서는 당초 '쩐의 전쟁'이 예년만큼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예상가의 2배가 넘는 계약이 여럿 나오면서 역시나 '어메이징'한 스토브리그가 되고 있다. 사상 첫 1000만 관중 시대가 열리며 구단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짐과 동시에 구단 샐러리캡 한도가 20% 증액(137억1165만원)된 영향도 있다. 트레이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FA 선수 영입만큼 확실한 전력 강화 수단도 없다. 여기에 한화처럼 가을야구가 아주 절박한 팀이 불꽃을 쏘아올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한 가지. 내년 시즌 후에는 강백호(KT)가 FA 자격을 얻는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 신분 조회까지 받은 강백호의 몸값이 벌써부터 궁금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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