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살며 생각하며]

2024. 11. 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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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란 소설가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한국인
버스서 독서 모습 보면 반가워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산다는 말
유용하게 사용하면 또 어떤가
자기만 알고 타인 꺼리는 시대
책과 함께한다면 넉넉히 견뎌

강인 줄만 알았던 한강이 해일이 되었음을 절감하는 나날이다. 가뭄의 단비는 당장의 해갈을 풀어줄 뿐이지만, 해일의 어마어마한 위력은 황량한 대지를 비옥하게 바꿀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여 한강 작가의 책을 일별하면서 가격을 계산해 본다. 얼추 20만 원 정도면 대부분의 책(단독저서)을 책장에 꽂아두고 천천히 읽어볼 수 있다. 장난기 발동한 김에 20만 원으로 뭘 할 수 있나 찾아보니 신상 운동화 한 켤레나 백화점에서 파는 구두 ‘한 짝’을 살 수 있다. 요즘처럼 책이 뜨거운 화제가 된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부디 이 열기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탔는데 내 앞에 앉은 젊은 여성과 그 옆 문 쪽에 기댄 중년 남성이 책을 읽고 있었다. 서 있던 나까지 더하면 반경 1m도 안 되는 공간에서 무려 3명이나 독서 중이었던 거다.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내가 서울 와서 맨 처음 지하철을 탔던 열아홉 살 때 이후 이토록 희귀한 장면은 없었다. 그들은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조금만 몸을 비틀면 보일 것 같았으나, 등의 가려움을 견디듯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그저 놀랍고 흐뭇한 마음만 참지 않고 누렸다. 물론 한강 작가를 추앙하는 마음도 참지 않았다.

대중교통에서든 카페에서든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냥 반갑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절반에 가깝다는 통계를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땅의 반 중에서 반, 그중의 반, 또 그중의 반보다도 희박한 인류와 조우한 셈이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최근 선물 받은 책 중에 ‘옥스퍼드 책의 역사’(교유서가)라는 ‘벽돌’이 있다. 600쪽이 넘는 데다 크기도 웬만한 소설책의 두 배쯤 된다. 내 독서력으로는 롤리 팝 핥듯 야금야금 읽게 되겠지만 벌써 어깨가 한 뼘쯤 솟는 느낌이다. 이 책의 맨 앞부분에 있는 연표를 재미 삼아 짚어나가다가 깜짝 놀랐다. 기원전 아시리아와 이집트에 이미 도서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초의 공공도서관은 서기 39년 로마에 있었다 하고. 역사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형태와 기능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저 책이란 물건이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의 스승이자 친구 역할을 해왔다는 방증 앞에 숙연해질 따름.

다채로운 영상매체가 시대를 풍미하는 지금 아직도 책이냐고 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책이란, 교문을 나서면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집어던진 이후 없어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더라고 설파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래, 좋다. 그까짓 책 좀 안 읽으면 어떤가. 그러나 말이다.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아니 될까.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워보라. 그 어떤 실내장식품보다 품격 있는 취향을 과시할 수 있다. 그뿐인가. 한국인의 필수식량 라면을 생각해 보라. 물론 짜파게티 포함이다. 자, 이것들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던가. 냄비째 갖다 놓고 먹어야 제맛이 아니던가. 그때 책은 냄비 받침으로 얼마나 유용한가. 무릇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책을 물성으로만 취급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한 걸음만 더 품위 있게 나가보자.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에서 삼촌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해를 태양으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 시대의 걸출한 소설가 구병모가 여성임을 알고 있었는가? 교과서 등재 시인 나희덕도 여성이란 사실은?

재미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면 또 있다. 최근 힙해진 출판사 녹색광선의 책들은 또 어떻고. 알베르 카뮈와 안톤 체호프, 프랑수아즈 사강과 슈테판 츠바이크,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알렉산드르 푸시킨, 잭 런던과 프랜시스 S 피츠제럴드와 김사량 같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작가들의 책이 어여쁜 만듦새로 텍스트 힙 세대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공들인 양장 제본에 각각의 빛깔을 입힌 책이 일렬로 꽂힌 광경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가 부럽지 않다.

이 모든 말이 농담으로 들린다면 다음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주기 바란다. 며칠 전 충남 천안의 독립서점 가문비나무아래에서 열린 김애란 소설가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도무지 흑자를 내지 못할 구조인 그 책방에 소설을 사랑하고 문학을 숭상하며 일상에서 책을 보듬는 이 수십 명이 흥분된 얼굴로 모였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1인칭 주인공 시대이다. 2인칭, 3인칭 시점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자기 서사에 매몰되고 타인을 지옥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초대장이 아닌가. 또 이런 말도 했다. “실망, 허무, 권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깨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강연이 일단락되자 참가자들의 질문이 뜨겁게 이어졌다. 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마디 보탰더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오직 책을 통해, 소설을 통해 은밀하게 교감해 온 작가와 전격적으로 연결되는 그 순간, 심장이 두 배 속도로 뛰는 소리가 들렸다.

고급 구두는 신을 일이 없으니 건너뛰고, 밑창이 닳아 물 새는 운동화를 새 걸로 바꿔볼까 하던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 돈이면 책이 몇 권인가. 기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장일호도 산문집 ‘슬픔의 방문’에서 그랬다. ‘책 팔아서 버는 돈이 생기면 책 사는 데 쓸 것’이라고.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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