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하자마자 ‘WTO 무력화’ 가능성… ‘분쟁 중재자’ 없어지나 [트럼프 2기, 재편되는 세계 질서]

■ 트럼프 2기, 재편되는 세계 질서
‘다자 무역’ 체제 타격
‘中에 우호’의심받은 사무총장
美 반대로 연임 무산될 수도

집권 1기 때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 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로 30여 년간 다자무역을 뒷받침해온 WTO 체제에 타격이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WTO가 중국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등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의구심을 내비쳐 왔다. 특히 현재 WTO 사무총장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중국의 지원을 많이 받는 나이지리아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던 점을 고려하면 정권 초반부터 WTO 무력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WTO는 오는 28∼29일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의 연임을 논의하는 특별이사회를 개최한다. 이는 당초 예정보다 2개월 앞당긴 것으로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이 트럼프 당선인 승리를 대비해 일정을 조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임기 4년의 WTO 사무총장은 164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만큼 어느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선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일정을 조정한 WTO에 우려를 표명한 상태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2020년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했던 트럼프 당선인에게 날을 세워왔다. 지난 4월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공약에 대해 “무역 상대국의 보복을 촉발하면서 거래 당사국 모두 실패하는 상황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미국 측이 연임에 반대하면 WTO는 수장 공백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설령 만장일치로 연임이 된다 해도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후 1기 때처럼 WTO를 부정하고 미국 법을 앞세운 통상 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 차별적 무역 행위 등을 하는 교역 상대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허용하는 ‘슈퍼 301조’를 동원해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등과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에 관세를 부과했다. 또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효해 긴급 무역제재를 시행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이러한 정책이 재개되면 이는 WTO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WTO 체제가 무너지면 각국이 미국과 무역 분쟁이 생겼을 때 제소로 해결한 ‘방어 수단’을 잃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역 분쟁 해결에 독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맡은 WTO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미국과 무역 파트너 간의 관세와 보복의 파괴적인 순환이 발생해도, 개입할 국제 중재자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종혜 기자 ljh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