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정신승리는 이제 그만 [김민아의 훅hook]

김민아 기자 2024. 11. 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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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환송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또 꼬리를 내렸다. 이런 표현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대안을 찾아보려 했으나, 더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사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한 대표는 늘 그랬다. 당장이라도 윤석열 대통령을 들이받을 듯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순간뿐이다.

올해 초 윤·한 갈등이 고조됐을 때,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을 만난 한 대표는 ‘폴더 인사’를 했다. 지난달엔 대통령 독대를 줄기차게 요구하더니, 정작 멍석이 깔리자 교장 선생님 앞에서 야단맞는 고3 반장 같은 표정으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배석한 정진석 비서실장은 학생주임 같았다). 그것이 한동훈이다.

지난 7일 윤 대통령 기자회견은 친윤계가 봐도 ‘쉴드(방어막) 치기’ 어려운 망작(亡作)이었다. 내용, 태도, 언어… 모든 요소가 낙제점이었다. 놀랍게도 한 대표는 합격점을 줬다. “대통령께서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 쇄신, 김 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 없는 임명에 대해 국민들께 약속하셨다”(8일 페이스북).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따져보자.

첫째 사과. 현장에서 경청하던 기자조차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했다. 국민들이 과연 무엇에 대해 사과했는지 어리둥절 할 것 같다”며 다시 질문할 정도였다. 윤 대통령은 추가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둘째, 인적 쇄신. “검증에 들어갔다”면서도 ‘내년도 예산 처리’와 ‘미국 새 정부 출범’ 등을 이유로 “시기는 조금 유연하게”라고 토를 달았다. 미국 새 정부 출범은 1월 20일이다. 올해 안에는 아무 것도 않겠다는 얘기다.

셋째, 김건희 여사 활동 중단. “외교 관례상, 국익 활동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저와 제 참모가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단해왔다. 앞으로도 이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한 대표는 14일 시작된 윤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 김 여사가 동행하지 않은 걸 ‘성과’로 내세울 듯하다. 이번에는 안 갔지만, 다음엔 또 모른다. 한동안 침잠하던 김 여사는 지난 9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디올백 수수 사건과 관련해 불기소를 권고하자 나흘 후 서울 마포대교 순시에 나섰다. 순방 동행 역시 그런 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특별감찰관(특감). “국회에서 두 명 추천하면 대통령이 한 명 임명하게 돼 있고, 국회에서 추천이 오면 대통령이 임명 안 할 수 없다.” 조건을 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흔쾌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한 대표 옆에 앉은 이는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다. 대통령실 제공

사실과 무관하게 ‘정신승리’를 선언한 한 대표는 이제 특감에 올인할 태세다. 14일 의원총회를 연 국민의힘은 앞서 국회를 통과한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의 재의요구(거부권 행사)를 건의키로 했다. 대신 특감 추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자못 비장해 보이지만, 특감 추진은 무의미한 이야기다. 일단 민주당이 추천 절차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 설령 야당이 협조해서 임명에 이른다 해도 큰 의미는 없다.

국민은 김 여사가 대선후보·대통령 당선인·대통령의 배우자로서 ‘이미’ 한 일에 과오나 위법이 없는지 따져보길 원한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5~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건희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63%로 나왔다. 윤 대통령 기자회견 후인 지난 9~11일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69.7%가 특검에 찬성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 대표가 ‘특검 대신 특감’을 외치는 건, 이미 한 일은 눈감아주고 ‘앞으로’ 할 일만 지켜보자는 거다. 그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해온 ‘국민 눈높이’에 맞을 리 없다.

참으로 ‘투명한’ 정치인이다.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까 두려워하는 속내가 그대로 읽힌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전직 우등생, 상명하복 마인드를 버리지 못한 전직 검사의 한계다. 당장은 김건희 특검을 회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분노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정신승리’ 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사인(私人)들도 안다. 그게 가짜 승리임을, 고통을 회피하려 잠시 거는 자기최면에 불과함을. 집권여당 대표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이 정신승리에 빠져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 김 여사, 친윤, 대구·경북(TK)의 사랑을 잃을까봐 겁이 나는가. 4월 총선 이후 ‘자연인 한동훈’이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참에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도 읽어보면 어떨까.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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