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앞두고 탐색전은 사치... 尹-시진핑 올해는 만난다[정치 도·산·공·원]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페루 리마로 향했습니다. 미국 대선 이후 윤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입니다. 순방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지만, 이번의 경우 굳이 하나를 우선적으로 꼽으라면 단연 한중정상회담입니다. 윤 대통령 뿐만 아닙니다. 상대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우선 순위에 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중 양국의 국민 정서가 상대를 향해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왜 이토록 정상들은 서로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사실 두 정상은 그동안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간'을 보며 의중을 떠봤지요. 윤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 맞서 ‘가치 외교’를 기치로 내걸고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우며 이른바 ‘자유 진영’ 국가들과의 결속을 강화해왔습니다. 자연히 중국과 서먹할 수밖에 없었지요. 중국도 마찬가지로 관망하는 기간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 한국 정부가 대중정책의 큰 틀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서로 적당한 존중과 작은 긴장의 시간'을 보냈다는 게 중국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들의 평가입니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동북아 정세 관리 중요
그런데 이제 탐색전을 끝내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동북아 정세 관리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비교하면 ‘동맹의 가치’보다는 '비용과 이익'을 중시하는 스타일입니다. 물론 동맹이자 혈맹인 미국이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가 동맹이라는 이유로 미국 중심 외교에 그쳐서는 안 되는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도 한국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가 참전을 통해 군사동맹으로 한껏 밀착하며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있고, 트럼프는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누차 공언하는 마당에 시 주석의 속이 편할 리 없습니다. 한국과 손을 잡고 양국관계를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결국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별도 회담을 갖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도 시 주석도 절호의 기회를 날리는 셈입니다.
중국 유화 제스처... 한중 정상회담 내용에 주목
중국이 먼저 유화 제스처를 보냈습니다. 미 대선 직전인 1일 중국 외교부는 전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비자 면제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터라,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파격적입니다. 한중관계에 긍정적 신호가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 측에 사전 설명 없이 한국을 비자 면제 대상에 포함시킨 의도와 배경은 면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북한의 러시아 밀착 행보를 견제하기 위한 것’, ‘새로운 미 정부와 직면하기에 앞서 한중관계의 좌표를 복원하려는 의미’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쨌든 중국 지도부가 깜짝 발표를 통해 한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복원하려고 시도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윤 대통령이 답을 할 차례입니다. 사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대중외교를 놓고 '최선이었다'는 평가와 '아쉽다'는 평가가 공존합니다. 한미일 정상이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에서 만나 3국이 최고수준으로 결속하는 성과를 이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던 중국과의 관계 회복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한미일 협력과 한미동맹 결속에 따른 안보 불안 요소 제거, 대미 수출 증가는 눈에 띄는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166억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바이든 정부 시기인 2021년부터 227억달러,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인 444억달러, 올해 1∼9월 대미 무역 흑자는 399억달러로 갈수록 최고치를 찍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좋은 추세가 일단 한 풀 꺾일 전망입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위기이자 기회”라며 양면성을 강조하지만, 이처럼 명암을 동시에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위기'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자인하는 셈입니다. 가장 시급한 건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우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라는 칼날을 피하거나 타격을 덜 입는 식의 협상이겠지만, 수출 1위 국가이자 반도체-배터리 원자재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과의 외교에 적극 나설 시점인 것도 사실입니다. 갈수록 위험요인이 증가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보더라도 중국은 우리가 적극 관리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북러 밀착’이 향후 ‘북중러 밀착’으로 확대된다면 불행은 국민들의 몫입니다.
윤 대통령 임기 전반부엔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한 차례에 그쳤습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과 만났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는 달랐습니다.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 추가 정상회담을 기대했지만 회의 도중 3, 4분가량 담소를 나누는데 그쳤습니다. 물론 정부가 추구하는 외교 기조가 뚜렷한 만큼 외교의 의연함을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지난해 APEC 기간에 중국과 일본 정상은 만난 것에 비하면 당시 한중관계가 얼마나 뒤틀려 있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내년엔 경주 APEC... 윤 대통령의 외교 시간
임기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엔 윤 대통령에게 기회가 제법 있습니다. 현재 참석하고 있는 페루 APEC도 기회의 장이지만, 내년 경주에서 우리가 주최하는 APEC 정상회의는 윤 대통령에게 외교분야 최대 호재입니다.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만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올해 APEC와 내년 APEC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공감대를 이뤘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양국 정상들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수의 정상회담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각국의 이득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외교의 시간'이 펼쳐지길 기대해봅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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