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20세기 발라드 아이돌'의 21세기식 이별노래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24. 11. 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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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사진=케이문에프엔디

모든 사람에겐 자기 세대의 '젊음'이 있다. 그것은 나의 젊음이었던 동시에 당대의 젊음이기도 했다. 젊은이들을 노리고 생산된 그 시대의 음악은 그래서 서로 얼굴도 모르는 너와 나의 유행가였다. 스타일(장르)은 다를지언정 뜨겁고 설레는 그 마음만은 1984년이나 2024년이나 매한가지다. 이문세는 그중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감성으로 무장한 명곡들을 불러 1980년대를 상징한 가수였다. 그리고 이 글은 20세기 후반기를 이끈 한국 가수가 21세기 초반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생존 신고 성격의 리뷰다.    

그렇게 데뷔 후 흐른 46년. 이문세는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겼다.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음악만은 늙지 않도록 늘 고민했고 보살펴왔다. 올해까지 발표한 정규작 16장, 내년(2025년)에 내놓을 17장째 정규작 구상이 다 그런 정성의 일부다. 그러니까 이문세의 17집은 6년 전 16집 이후 7년 만의 신보가 되는 셈이다. 좀 더딜 순 있어도 멈추진 않겠다는 노장의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발매 간격이다. 떠올려 보니 과거 이문세 16집 리뷰에 나는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이문세는 혼자서 둘이고 싶을 때 듣고 싶던 가수였다."

또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다. 

"이영훈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림 같은 노랫말, 재즈와 클래식과 팝이 뒤엉킨 그의 음악은 이문세의 반쪽이었다."     

사진=케이문에프엔디

지난 11월 13일 발매한 '이별에도 사랑이'를 들으며 나는 이문세를 위한 저 두 전제를 곱씹었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혼자서 둘이고 싶을 때" 어울렸고, 작곡가 이영훈을 "이문세의 반쪽"이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로서 타당했다. 단지 거기엔 '사랑이 지나가면'처럼 떠난 사람을 처음 만난 사람으로 대하리라는 독한 마음은 없다. 대신 새 노래는 따스한 그리움의 분위기나,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 두리란 체념적 운치에서 모두 '옛사랑'을 닮아 있다. 차이라면 옛 노래가 지닌 공허한 미니멀리즘에는 살짝 거리를 둔 채, 시작부터 화려한 스트링을 심어 쓸쓸한 이별 속에 숨은 찬란했던 사랑의 기억을 부각하는 것 정도다. 이처럼 겉과 속 모두 은근히 이영훈의 정서를 닮은 '이별에도 사랑이'를 만든 이는 헨(HEN). 이문세가 2023년 12월에 공개한 17집의 첫 번째 단서 'Warm is better than hot'을 썼던 인물이다.     

이문세는 트렌드와 옛 것을 함께 간직한 헨의 '천재성'을 높이 샀다. 가령 90년대를 대표한 음악가들(김현철과 유희열, 정원영과 유정연, 조규찬과 김형석 등)을 자신의 90년대 앨범에 초대했거나, 14집에선 힙합을 받아들이고 15집에선 나얼, 규현과 마이크를 공유한 이문세의 트렌디 성향은 헨과의 첫 번째 작업 'Warm is better than hot'에서 부분적으로 성사됐다. 이어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이문세의 레트로적 연륜과 헨의 뉴트로적 감각은 이번 '이별에도 사랑이'에서 시너지를 일으켰다. 흥미로운 건 이런 헨의 곡들을 16집 때처럼 블라인드 초이스로 이문세가 받아들인 일이다. 즉 그는 우연히 자신을 사로잡은 헨의 멜로디를 헨의 것인 줄 모르고 선택한 셈이다. 남은 여정에서 헨의 곡들이 이문세의 17번째 작품에 얼마나 더 첨부될 진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까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곡 제목처럼 이문세는 헨에게 '푹' 빠져 있는 듯 보인다.

사진=케이문에프엔디

이문세의 열혈 팬을 자처한 배우 윤계상이 뮤직비디오에서 열연해 준 '이별에도 사랑이'와 함께 이문세 17집의 세 번째 선공개 트랙으로 우리를 찾은 노래는 '마이 블루스'다. 집에서 블루스 기타를 치며 "노랫말과 멜로디가 같이" 나왔다는 이 노래는 인생의 저녁에 접어든 예술가들이 흔히 하듯, 지나온 삶 또는 삶 자체가 지닌 생리에 관해 가만히 되짚어보는 순간이다. 구차한 잡념은 털어내고 사유의 순수함만 가슴에 담아 터덜터덜 걸어가는 곡에 맞게 가사 역시 서글서글하게 흘러간다. 미국과 호주에서 각각 작업한 믹싱과 마스터링에 힘입은 사운드의 매끈함은 훌륭하며, 기타리스트 세 명이 번갈아 뜯어주는 블루지 릭(licks)과 피아노/올겐을 넘나드는 건반의 느슨한 멍석도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46년 경력이 허투루 쌓인 게 아니라는 걸 가수의 자작곡은 가감 없이 들려준다.     

과거와 현재를 함께 쥐고 미래를 향해 손짓하는 이문세의 음악 행보는 "은퇴는 없다"는 호언으로 갈음된다. '마이 블루스'의 가사 마냥 "누구나 가는 그 길 잘 놀다" 가기 위해 그는 지금 선배 조용필의 '20집'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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