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에 빠진 명태균의 여론조사…‘손석희 국감 출석’도 돌렸다
소상공인 반대하는 ‘스타필드 창원 입점’에 찬성 결과 내놔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54·구속)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그가 과거에 정당 통합∙국정감사∙지역 이슈 등 다양한 내용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표본 조작으로 인한 전과가 있음에도 선거 여론조사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조작 방법까지 드러난 판국이라 명씨 측으로부터 나온 조사의 신뢰성에 전반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명씨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낳은 기관은 미래한국연구소다. 그가 실질적으로 운영했다고 알려진 이 연구소는 지난 대선 경선 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홍준표 대구시장을 앞선다는 여론조사를 내놓은 곳이다. 이를 포함해 명씨는 미래한국연구소가 대선 전에 실시한 81차례 여론조사의 비용 중 일부를 2022년 6·1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로부터 충당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2018년 경남 창원에서 설립됐다.
시사경남, 정치∙경제∙행정 등 다양한 안건 조사
그런데 명씨의 여론조사 이력은 그 전부터 시작됐다. 1년 전인 2017년 명씨가 만든 인터넷 매체 '시사경남'도 다수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명씨는 시사경남의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대표를 맡았고, 2018년 부인 이아무개씨를 사내이사로 앉혔다. 시사저널은 시사경남의 유튜브 채널과 지금은 폐쇄된 홈페이지의 과거 화면을 통해 해당 매체가 어떤 여론조사를 했는지 살펴봤다.
2017년 10월 시사경남은 "긴급 여론조사"라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에 관한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경남 지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163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해당 조사에서 "통합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4.7%로 나타났다. 반면 "통합이 필요없다"는 37.1%, "통합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9.3%였다. 둘을 더하면 46.4%로 통합 찬성 응답을 근소하게 앞섰다. 공교롭게도 당시 당내에서 찬성파의 기수는 자유한국당 대표이자 명씨의 여론조작 의혹의 희생양으로 꼽힌 홍준표 시장이었다.
또 2017년 10월 시사경남은 'JTBC 손석희 사장,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나'란 주제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경남 지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79명이 조사 대상이었다. 그 결과 "출석해야 한다"가 48.7%,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가 45.6%였다. 조사 당시 보수 야당은 'JTBC 태블릿 PC 보도'에 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감에 손 사장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치적 쟁점 외에 지역 경제 현안과 관련된 사안을 여론조사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다. 2017년 12월에는 신세계 복합쇼핑몰 스타필드의 창원 입점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은 20대 이상 창원 시민 1378명과 창원 소상공인 436명이었다. 그 결과 시민의 59.4%, 소상공인의 48.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답변은 시민의 29.4%, 소상공인의 42.9%였다. 모두 찬성이 반대 답변을 웃도는 수준이다.
이는 당시 소상공인 측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창원소상공인연합회는 "다른 상업시설은 몰라도 '스타필드'만큼은 안 된다"고 강력 반발했기 때문이다. 경남소상공인연합회도 "스타필드가 들어오면 경남 전체 상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2019년 7월 여론조사 전문업체 '코그니티브컨설팅'이 스타필드 입점 예정지 주변의 소상공인 사업체 500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56.2%가 "스타필드는 지역 상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명씨는 소상공인보다 규모가 큰 중소기업 600여 개가 모인 '중소기업융합경남연합회'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다. 창원시는 결국 스타필드 측에 개설 허가를 내줬다. 스타필드 창원점은 2027년 개장을 목표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 밖에 시사경남은 △평창올림픽 시 남북한 한반도기 공동 사용 △창원시청 청사 이전 △고등학교 위치 이전 등에 관한 찬반 입장을 여론조사에 부쳤다. 이 같은 여론조사를 공직선거법에 의해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만 규제하기 때문이다. 조작 여부는 별개 문제다. 그러나 시사경남 이후 출범한 미래한국연구소는 선거 여론조사에도 손을 댔고, 이것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래한국연구소는 대선을 앞둔 2022년 2월 보수 성향 매체∙유튜브 등과 공동으로 '대선후보 중 어느 후보의 가족이 도덕적으로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란 주제로 조사를 의뢰했다. 여기에서 이재명 후보를 꼽은 응답은 49.4%로 윤석열 후보(43.6%)보다 높았다. 그해 5월에는 시사경남과 공동으로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 조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60.5%로 민주당 송영길 후보(31.8%)를 두 배 가까이 앞질렀다.
조작만 17회…"미검증 표본 10만여 개 동원"
해당 조사 두 건을 수탁한 외부기관은 여론조사업체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다. PNR은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 수탁 기관으로 숱하게 등장한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11월13일 미래한국연구소와 PNR이 수행한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토대로 양사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시사경남과 미래한국연구소의 모든 여론조사가 조작됐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과를 미심쩍게 하는 전력이 있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판결문에 의하면, 미래한국연구소는 2019~22년 불법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한 혐의로 3차례 재판에 넘겨져 총 24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 표본을 조작한 사례만 17회에 달했다. 2020년 3월에는 21대 총선 관련 여론조사를 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표본 10만여 개를 동원했다. 해당 표본은 성별, 연령, 거주지 등 계층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 여론조사를 할 때는 조사 대상의 전 계층을 대표할 수 있도록 표본을 선정해야 한다.
조작의 정황은 또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1월11일 공개한 통화 녹음파일에 따르면, 명씨는 "그때 ARS 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상대편 지지자가 누군지가 쫘악 뽑아져 나온다"며 "다음에 진짜 (여론조사가) 돌아가는 날 우리도 상대 지지자한테 전화하지? 그럼 그 사람은 전화받았다고 하지. 그다음에 자기 전화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전화받(겠)나?"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명씨가 미리 당원들의 지지 성향을 파악한 뒤 공식 여론조사 때 이른바 '방해 조사'를 실시한 정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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