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만 좇으면 비슷한 소재 반복… ‘다른거 없을까’ 끊임없이 질문해야”[M 인터뷰]

안진용 기자 2024. 11. 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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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흑백요리사’ 제작 윤현준 스튜디오슬램 대표
해피투게더·효리네민박 연출
지상파·종편·OTT 모두 경험
이직하는 기준은 ‘피가 끓는지’
백종원에서 출발한 흑백요리사
‘안대 쓰고 맛평가’ 흥행 적중해
시즌2서 ‘흑백·공정’ 지켜갈것
예능시장 파이 커져가는 시점
어떤 얘기 풀어낼지 고민해야
지난 6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만난 스튜디오 슬램 윤현준 대표는 “한국적인 요소를 담으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예능 기획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백동현 기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은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다른 것’은 늘 있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으로 ‘예능 전성시대’를 연 스튜디오 슬램 윤현준 대표 겸 PD의 지론이다. 그는 1997년 KBS 예능 PD로 입사 후 “반갑다 친구야”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해피투게더’와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비롯해 2011년 JTBC 이적 후에는 ‘슈가맨’ ‘효리네 민박’ 등을 연출했다. 2020년 스튜디오 슬램 설립 후 ‘싱어게인’과 ‘크라임씬’ 시리즈를 선보인 윤 대표가 시시각각 유행이 변하는 방송가에서 27년간 버틸 수 있었던 건 “다른 거 없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결과다.

‘흑백요리사’ 성공 후 윤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러브콜이 빗발쳤다. 정작 “훌륭한 후배 연출 PD들이 있으니 저는 인터뷰를 그만하려 한다”며 손사래를 치는 윤 대표를 “‘흑백요리사’가 아니라 예능 전성시대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졸라 지난 6일 서울 상암 JTBC 사옥에서 만났다.

―‘흑백요리사’가 ‘예능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가 입사할 때는 ‘드라마 판’이었다. 드라마의 시대였는데, 어느 순간 ‘1박 2일’ ‘해피투게더’가 성공하면서 ‘예능도 드라마 못지않은 시청률이 나온다’는 인식이 생겼다. 예능은 효율이 좋은 콘텐츠다. ‘흑백요리사’도 예능치고는 제작비가 높았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1, 2회 분량을 만들 수준이었다. 즉 ‘가성비’가 좋다는 뜻이다. 다만, 아무리 성공해도 ‘오징어 게임’처럼 되기 어렵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예능은 ‘정서’가 중요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기 어렵지 않나.

“맞다. 드라마는 예능보다 정서적인 허들이 낮다. 반면 웃음을 중시하는 예능은 각 나라의 감성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꼭 웃음을 이끌어 내지 않더라 보다 보편적인 감성으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예능이 필요하다. ‘흑백요리사’나 ‘피지컬 100’은 그런 예능의 표본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적인 요소를 담으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기획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윤현준 대표가 직접 섭외한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인 백종원(왼쪽)과 안성재.

―‘흑백요리사’는 어떤 지점에서 세계적인 공감을 산 것 같나.

“넷플릭스 예능은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공개된다. 중간에 수정할 수 없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미리 살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심사위원들이 안대를 쓰고 맛을 평가하는 장면을 보고 ‘흑백요리사’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이 적중했다. 정작 두 심사위원은 눈을 가려 굉장히 답답해했지만 그런 반응조차 신선했다. 그 장면을 본 모두가 ‘공정’을 떠올린 것 같다. 공정은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인데, ‘제작진이 정말 공정하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을 준 거다. 아울러 눈을 가리고도 맛을 보고 음식의 재료까지 맞히는 모습을 보며 두 심사위원의 역량에 대한 신뢰가 크게 상승했다. 그 장면이 첫 번째 변곡점이었다.”

―‘흑백요리사’가 백종원에서 출발했다던데.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원래 기획한 제목은 ‘무명 요리사 100’이었다. 여기서 ‘100’은 도전자 100명과 백종원의 ‘백’이라는 중의적 의미였다. 백종원이라는 친숙한 레퍼런스를 갖춘 후에 무명 요리사의 이야기를 해보려 했다.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한 것이다. 그러다가 흑수저와 백수저 요리사의 대결로 발전했다. 백종원이 아니면 안 됐다. ‘과연 대체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고민했다. ‘계급장 떼고 붙는 것’이라는 콘셉트와 넷플릭스 편성 작품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한 것 같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OTT 플랫폼을 모두 경험한 PD이지 않나. 각 플랫폼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 기준으로 플랫폼을 옮길 때마다 ‘피가 끓느냐’로 판단했다. 신규 플랫폼일수록 새로운 콘텐츠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청층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데, 스스로 ‘도전해보자’는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했다. ‘KBS에 뼈를 묻겠구나’ 느낄 때, JTBC로 먼저 간 KBS 출신 김시규 총괄의 이직 제안을 받았다. 초기에는 힘들었지만 ‘슈가맨’이나 ‘효리네 민박’의 반응을 보며 ‘이런 길도 있구나’ 싶었다. 또 다른 곳으로 이직을 고민할 때, ‘예능 레이블을 만들려 한다. 네가 하면 안 되냐’는 제안을 받고 (SLL 산하 레이블인)스튜디오 슬램을 맡게 됐다. 다행히 첫 작품인 ‘싱어게인’이 잘되어서 다음 작품을 할 동력을 얻었다. 예능은 시행착오를 겪고 경험을 해봐야 발전할 수 있는데 요즘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환경이라는 것이 아쉽다.”

―프로그램 제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다. 트렌드만 좇아서는 안 된다.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살펴야 하고, 어떤 사람을 섭외해 이야기를 풀어갈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싱어게인’을 기획할 때는 트로트가 인기였다. 하지만 나까지 트로트 오디션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 인기가 높았으나 지금은 잊힌 가수를 재조명하는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연출한 뒤였는데, ‘슈가맨을 데려와서 오디션을 하자’는 작가의 제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붙여 불렀다. 그래서 ‘○○번 참가자’가 탄생했다. 인지도가 높은 가수도 번호로 부르니 무명 가수가 되더라. 대중이 이 시점에 호응해줬다. 그 연장선상으로 ‘흑백요리사’에서도 흑수저 요리사에게 이름이 아닌 별명을 붙였다. 무명의 가수나 요리사가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중의 감정을 이입한 것이다. 또한 ‘100명이 함께 요리하는 장관을 만들어보자’는 시도를 넷플릭스가 인정해주면서 이 프로그램을 착수하게 됐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어떻게 달라지나. 정말 고든 램지를 섭외하나.

“진작에 파티는 끝났다. 사실 시즌1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이제부터는 ‘선타기’다. 너무 비슷하면 ‘달라진 게 없네’, 너무 달라지면 ‘왜 바꿨지’라는 불만이 나올 거다. 그 안에서 지킬 건 딱 두 가지다. ‘흑백’이라는 설정과 ‘공정’이라는 대전제다. 이 둘만 빼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고민하는 처절한 회의를 할 것이다. 완벽할 순 없다. 시청자들 보라고 만들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이상하다’고 하면 그게 옳다. 시즌1의 아쉬움이 8이었다면 시즌2는 3 정도로 낮추자는 취지다. 섭외에 대한 문의가 많다. 과연 고든 램지가 나올까? 그리고 나온다면 참가자인가, 심사위원인가? 등등이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름이 거론된 건 맞지만 출연 여부를 떠나 더 다양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윤 대표는 이미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현재는 JTBC 아이돌 오디션 ‘프로젝트7’가 방송되고 있다. 시청자들이 직접 좋아하는 참가자를 선별해 그룹을 구성하는 ‘조립’과 ‘강화’라는 개념을 넣어 쌍방향 소통을 강조했다. 내년에는 ‘흑백요리사 시즌2’ 외에도 JTBC와 토종 OTT 티빙을 거쳐 이번에는 넷플릭스에서 추리 예능 ‘크라임씬’ 새 시즌을 선보이고, ‘싱어게인’도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예능 시장의 다음 행보는.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공급되는 예능 편수도 늘었다. 그런데 그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이 탄생했나? 그렇지 않다. 여전히 특정 소재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강하다. 현재 업계의 위기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출혈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다른 거 없을까?’ 다른 것을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쉽진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각 플랫폼이 예능 제작에 관심을 보이는 지금이 예능 시장의 파이가 커질 수 있는 적기다.”

이효리의 복귀작이었던 ‘효리네 민박’(왼쪽)과 유재석의 종편 진출작으로 주목받은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섭외 잘하는 PD’로 유명… 유재석 종편 진출·이효리 연예계 복귀 이끌어

■ 윤현준 대표의 발로 뛰는 섭외

윤현준 대표는 ‘섭외 잘하는 PD’로도 유명하다. ‘흑백요리사’의 백종원에 앞서 지상파에 집중하던 방송인 유재석의 첫 종합편성채널 진출작인 ‘슈가맨’을 기획했고, 결혼 후 제주도에서 칩거 중이던 가수 이효리를 설득해 ‘효리네 민박’으로 복귀시켰다. “아무래도 오래 활동한 만큼 아는 사람이 많고 인맥이 넓을 뿐”이라는 윤 대표는 “‘누가 섭외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잘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더 적절한 섭외를 위해 많이 뛴다”고 말했다.

◇백종원을 위한 명분

백종원은 새로운 제작진과 좀처럼 손을 잡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파악한 윤 대표는 과거 tvN ‘집밥 백선생’을 연출했던 후배 고민구 PD에게 부탁해 백종원과 처음 만났다. 백종원은 출연 여부는 답하지 않았고, ‘밥 한 끼 먹기로 했으니 먹자’며 얼마 후 선릉의 한 순댓국집에서 윤 대표와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표는 “외국에 한식을 알리고, 이 프로그램을 본 외국인들이 한식을 먹으러 한국을 찾으면 좋지 않나.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방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백종원은 며칠 고민 끝에 “해봅시다”라고 섭외에 응했고, 이후 안성재 셰프가 합세하며 심사위원단이 꾸려졌다. 백종원은 ‘흑백요리사’ 세트장에 처음 왔을 때 “지금 본 것 중 제일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유재석을 향한 삼고초려

윤 대표는 ‘해피투게더’ 조연출 시절 유재석과 함께 일했다. 이후 단독 연출자가 된 후 이 프로그램의 새 코너인 ‘반갑다 친구야’를 기획해 성공을 거뒀다. 윤 대표는 JTBC로 이직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먼저 떠났고, 유재석에게 “나는 가지만, 너의 브랜드로 이 프로그램을 꼭 지켜”라면서 “나중에 꼭 한 번 같이하자”고 말했다.

당시 종편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다. 유재석의 자택이 있던 서울 압구정 단골 카페에서 그와 만난 윤 대표는 출연 가능성을 타진했고, 유재석은 “기획안만 좋으면 한다”고 흔쾌히 답했다. 윤 대표는 친정이었던 KBS 촬영장에 찾아가 기획안을 건네기도 했다. 10개 정도의 기획안이 오갔고, 유재석은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골랐다. 유재석의 종편행을 이끈 윤 대표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 “다행히 유재석이 저를 ‘잘하는 PD’라고 생각해준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효리를 설득시킨 진심

윤 대표는 ‘해피투게더’ 연출 시절 MC를 맡고 있던 이효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효리는 결혼 후 방송 활동을 접고 제주도 생활을 즐기고 있던 터라 다시 카메라 앞에 앉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만났고, 조심스럽게 복귀 가능성을 타진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이효리가 먼저 “제주도에서 민박이나 할까?”라고 툭 던졌다. 윤 대표는 이 기회를 놓지 않았다. 윤 대표는 “‘진짜 집을 공개할 수 있어?’라고 물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설득에 들어갔다”면서 “이 과정에서 (이효리의 남편인) 이상순도 만났는데 캐릭터가 너무 좋더라. 그래서 함께 출연을 제안했고 결국 성사됐다. 이효리를 복귀시키는 것은 제 의지이기도 했지만, 운이 좋았다”고 웃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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