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뇌를 멍청하게 만든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11.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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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 지음│김재경 옮김│추수밭
평균 날씨 바뀌면 극도의 불안
타버린 숲·메마른 들판 볼 땐
인간 정체성 흔들려 인지 저하
폭염에 충동성 늘고 보복행위
폭력 조절하는 세로토닌 급감
인류의 몸이 이상기후의 증거
뇌·데이터 과학자인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은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이 인간의 인지능력 저하, 폭력성 증대 등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기록적인 폭염과 갑작스러운 폭우 등 잦아진 이상 기후. 우리에게 기후위기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임을 깨닫게 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단순히 꽃이 늦게 피거나 여름이 길어지는 정도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가 멍해지고 행동이 둔해지고 불쑥 짜증이 나거나 우울해지는 등 우리의 정신과 행동에 악영향을 미치는 범인도 바로 기후다. 이러한 상관관계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한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현재의 기후변화가 우리의 두뇌, 행동, 인식, 결정에 끼치는 파장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뇌·데이터 과학자인 저자 또한 그들 중 하나다. 미 국방부에서 2015년 공개한 보고서는 그가 그동안 해온 연구를 뒤로하고 연구실을 나와 환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했다. 14페이지에 불과한 보고서에는 2000년대 중반 시리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가뭄이 기근과 이주 문제를 심화해 내전을 촉발했고 2012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가 국방부에서 2만4000명에 달하는 인력을 투입하는 국가적인 재난이었다는 사실을 담았다. 그간 다가올 재앙으로 여겨져 왔던 기후위기가 저자에게 ‘기후 불안’으로 다가온 순간이다.

그렇다면 기후는 무엇이기에 이토록 인간에게 중요한가. 세계기상기구(WMO)는 기후를 ‘평균적인 날씨’로 정의한다. 단순히 그날의 기온이나 강수량이 아닌 축적된 날씨를 의미하는 기후는 본래 인간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위해 평균을 내 만들어진 개념이다. 인간이 기후를 만들어낸 이유는 단순하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측정해 기후라는 특성을 부여, 문화적·심리적 안정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기후에는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역사가 담겨 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날씨의 집합인 만큼 그 안에는 인류의 생활상과 함께 일종의 믿음이 있다. 2015년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기후심리학이라는 신생 분야를 개척했다. 이어 경제학자들은 자연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뇌과학자 또한 자연환경의 변화가 인간의 뇌와 정신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 즉 기후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후 불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기존에 느꼈던 기온이나 날씨와 다른 환경에서 인간은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파괴된 환경이나 사라진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일종의 노스탤지어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호주의 철학자 글렌 알브레히트는 이러한 고통을 가리켜 ‘솔라스탤지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좋은 시기가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고통과 그리움”을 의미한다. 타버린 숲이나 사라진 산, 메마른 들판을 볼 때 인간의 정체성은 흔들린다. 기후 불안의 실재적 형태는 인지능력 저하를 통해 나타난다. 폭염과 대기오염으로 인해 우리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뇌과학적으로 보자면 기온의 급격한 상승은 뇌의 에너지 변환 과정에서 문제를 만든다. 기온이 높아지면 뇌세포는 뇌의 핵심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기억력 감퇴와 판단력 저하 등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조슈아 그래프 지빈 UC샌디에이고 환경경제학 교수가 진행한 연구는 특히 흥미롭다. 중국에서 매년 동시에 치러지는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의 시험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1 표준편차만큼 증가할 때 가오카오 성적은 1% 감소했다. 기온이 겨우 몇 도 오른다 한들 우리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기온은 우리의 뇌를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방식으로 망가트리고 있다.

조금 더 멍청하고 불안해지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변화된 날씨는 인간의 정서에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 양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더운 날씨에 대해 우리는 흔히 ‘짜증이 난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폭력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폭염 속에서 생존을 위한 신진대사에 열을 올리면서 멍청해진 뇌가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발생한다. 뇌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이 급감하면서 충동성이 오르고 보복 행위가 증가하는 것이다. 야구 경기에서도 이러한 폭력성은 드러난다. 책에 따르면 높은 기온은 투수의 공격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섭씨 13도인 날에는 투수가 상대 타자에게 복수할 확률이 22%지만 섭씨 35도인 날에는 그 확률이 27%까지 오른다. 동물에게도 공격성 증대 현상은 흔한데 수온이 높아지면 물고기의 공격성이 급격하게 상승하기도 한다.

그간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 관한 책은 서점가에 많았지만 기후변화의 증거로 인류의 몸을 제시하는 책은 귀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반 고흐의 작품에 토마토 수프를 던지라고 선동하거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라고 권하지 않고 그저 고조되는 위기를 느끼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폭염이나 산불, 태풍과 같은 현상이 아닌 우리 몸에 쌓이고 있는 흔적들은 그 심각성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진작 기후위기를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 사는 ‘기후 괴물’을 우리는 불쾌지수라는 이름으로 에둘러 불러왔다. 지나치게 습하거나 더워진 날씨에 인간은 더는 단순히 ‘불쾌’할 수가 없다. 384쪽, 2만2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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