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부터 끊으세요”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의 건강 조언

문영훈 기자 2024. 11.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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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광고를 보면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 나만 건강을 챙기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교대학원에서 원장을 맡고 있는 명승권 교수는 이러한 불안감 조성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인의 73.7%가 비타민 D 결핍 상태(2021년 기준)라고 한다. 12~18세 청소년으로 국한하면 10명 중 8명은 비타민 D 결핍 상태다. 비타민 D는 칼슘을 도와 뼈를 단단하게 만드는 영양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온라인 쇼핑몰에 우리 아이를 위한 비타민 D 영양제를 검색하고 싶어진다.

2021년 '국민건강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만 3~5세 식이보충제 경험률은 2012년 59.5%에서 75.8%로 증가했다. 국내 영유아용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019년 2854억 원에서 2023년 3293억 원으로 성장했다. 성장기 아이뿐 아니라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도 영양제를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을 자주 복용한다. 유튜브 등 SNS에서는 '키 크는 영양제’ '체력 길러주는 영양제’ '면역 높여주는 영양제’ 등 다양한 영양제 홍보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드는 이가 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대학원장은 대표적인 영양제 회의론자다. 2023년 11월 음식을 통한 비타민 C 섭취는 폐암의 위험성을 18% 낮추지만 영양제와 같이 보충제 형태로 먹는 경우 효과가 없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한 주제를 놓고 다양한 논문을 종합해 그 결과를 분석하는 메타 분석 전문가로 위 연구 역시 1992~2018년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20건의 연구를 종합한 결과다. '저속 노화 선생님’으로 불리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도 이 연구를 인터뷰에서 언급하며 "저속 노화 식단, 즉 음식으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명 원장이 섭취를 권장하지 않는 영양제는 비타민 C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비타민 제제를 포함해 머리에 좋다고 알려진 오메가3,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칼슘, 홍삼 등 대다수 건강기능식품이 실제 건강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10월 11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을 찾은 명 원장은 "다양한 영양제에 대한 효과를 메타 분석한 결과 꼭 먹어야 하는 영양제는 사실상 없을뿐더러, 신체에 유의미한 효과를 준다는 의학적 근거도 없다"고 단언했다.

영양제, 즙 대신 꼭꼭 씹어 먹는 식사가 중요

메타 분석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서울대에서 예방의학 석사 과정을 하면서 메타 분석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여러 개별 연구 결과를 종합하는 학문이라고 들었는데 흥미롭더라고요. 다만 당시는 2005년이라 국내에는 전문가가 없어서 독학을 통해 메타 분석 방식을 쓴 석사 논문을 발표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2007년 미국의사협회 공식 학술지인 'JAMA’에서 비타민 C 등 대표적인 황산화 보충제를 먹는 사람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가 높다는 메타 분석 결과를 봤어요. 질적 수준이 높은 임상시험 47편을 종합한 논문이었죠. 그때 앞으로 제가 연구해야 할 분야는 이쪽이구나, 확신했어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이 암 예방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를 파악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영양제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나요.
비타민, 유산균, 오메가3 지방산, 마그네슘, 항산화제 등 대부분 영양제는 질병 예방이나 키 성장, 두뇌 발달 등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임상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어른 경우에도 수술 환자나 특정 영양소의 결핍이 심하지 않다면 영양제 보충으로 몸이 더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영양제 등 건강기능식품의 효과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질병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 질병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의 경우 코로나19도 2주 정도만 지나면 치료됩니다. 감기의 경우엔 감기약 먹으면 일주일, 감기약 안 먹으면 7일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뭘 먹고 몸이 나았다’는 건 그 효과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또 위약(플라세보) 효과가 있습니다.

심리적인 효과라는 건가요.
그렇죠. 권위자나 전문가가 약을 주면 그게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도 몸이 나아졌다고 느끼기도 하거든요. 영양제 경우에도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기능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는데 국가의 인증을 받고 판매되는 건 합리적이거나 윤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죠.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팔릴 수 있나요.
2017년 이전까지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식약처 기준이 허술했어요. 크게 4단계가 있었는데, 질병 발생 위험감소 기능, 생리 활성 1, 2, 3등급 순입니다. 그나마 질병 발생 위험감소 기능과 생리 활성 1등급까지는 다수의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본 제품이지만 2등급은 한 건의 임상시험, 3등급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인증을 해줬어요. 2017년 이후 이 기준이 보다 엄격해지긴 했지만 그 전에 인증을 거친 제품도 여전히 판매되고 있죠. 그러니까 기존의 비타민을 포함해 현재 시판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다시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해 재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왜 음식으로 먹는 것과 영양제로 먹는 것의 효과가 다른가요.
2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합성 물질로 만들어진 영양분은 화학 구조 자체는 같지만 들여다보면 입체적 구조까지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달리 작용할 수 있다는 거죠. 또 음식에 함께 들어 있는 다른 성분이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가령 오렌지나 레몬에는 비타민 C 외에도 다양한 영양분이 포함돼 있죠. 그게 함께 작용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천연에서 추출한 영양분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영양분이 없으면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죠.

영양제는 결국 간편함이 포인트입니다. 실제 음식을 갈아 액체 형태로 먹는 건 괜찮나요.
주스 형태로 먹으면 당뇨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으면 당뇨 위험성이 떨어지는 것과 반대죠. 그 이유는 흡수가 너무 빨리 되기 때문입니다. 혈당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면 우리 몸에서는 인슐린을 분비하게 됩니다. 인슐린이 계속 분비되면 몸에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서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제대로 못 하게 되죠. 장기간 액체 형태로 먹으면 간이나 심장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은 씹어 먹는 걸 권장합니다.

최근 수험생들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약을 먹기도 합니다.
ADHD 치료제는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으로 돼 있습니다, 뇌 속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농도를 높여주는 물질이죠. 실제로 단기 기억력이나 집중력은 좋아지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중장기 효과, 특히 학업 능력 향상에 대한 임상적 근거는 없습니다. 반면 위장 장애나 두통 등 부작용은 확실하죠. 특히 정신적으로 환각 등의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성적 향상을 위해서 ADHD 치료제를 먹는 건 권장할 수 없습니다.

결국 건강하려면 좋은 음식을 통째로 먹는 수밖에 없네요.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게 제일 좋죠. 하지만 저는 적당량만 먹으면 나쁜 음식이 따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가령 적색육을 많이 먹으면 대장암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지만 적당량은 괜찮습니다. 피자와 치킨이 나쁘다고 하지만 영양 성분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으면 괜찮죠. 다만 아이들의 경우 편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건 필요합니다. 골고루 먹는 습관만 잡아준다면 영양제를 먹지 않고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권장섭취량 너무 높아 불안감 조성

명 원장의 '영양제 무용론’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 외에도 또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정한 권장섭취량이 과도한 측면이 있어 국민의 대다수가 영양 결핍처럼 여겨진다는 것. 서두에 소개한 비타민 D가 대표적인 사례다. 명 원장은 "권장섭취량 개념은 제2차세계대전 때 군인들의 영양 결핍을 막기 위해 도입됐는데 먹을거리가 풍부한 현재까지도 실제로 필요한 양에 비해 높게 측정돼 있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요.
권장섭취량은 건강한 사람 중 97.5%가 먹는, 그러니까 상위 2.5%가 먹는 양을 기준으로 합니다. 영양소가 풍부한 사람들도 이 기준에 못 미치면 영양 부족이 되는 거죠. 그래서 국가마다 권장섭취량이 다르죠. 각 국가에서 건강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니까요. 예를 들어 비타민 C의 경우 한국과 일본은 100mg, 프랑스는 11mg, 미국은 90mg, 영국과 인도는 40mg입니다. 식단 자체에 채소가 많이 들어간 경우 권장섭취량이 높아져요. 인종이 다른 걸 감안하더라도 권장섭취량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권장섭취량을 새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건가요.
저는 체질량지수(BMI)처럼 평균을 내서 적정 수준을 정하는 방식이 맞다고 봐요. BMI 수치가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처럼 권장섭취량 역시 건강한 사람들의 음식 섭취 평균값 정도로 정하는 게 적당하다는 거죠. 지금은 그 기준이 너무 높게 책정돼 있어서 한국 사람들의 80%가 비타민 D 결핍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거죠. 이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에서 적절한 권장섭취량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양제 회의론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회사는 없었나요.‌
공식적으로는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자신들의 제품은 다르기 때문에 홈쇼핑을 통해 광고해줄 수 있냐는 제의는 받았죠(웃음). 물론 거절했고요.

건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일단 근거가 확립되지 않은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양한 영양 성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메타 분석한 결과 어른, 아이를 통틀어 필요한 영양제는 엽산 하나입니다. 이 역시 엽산이 적절히 보충되지 않는 임산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요.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골고루 먹는 습관만 길러주면 됩니다.

#명승권 #영양제 #공부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게티이미지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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