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없애야 한다, 북한군이 배우기 전에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무대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벌어진 스페인 내전이다.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화파와,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국민파가 맞붙은 이 전쟁에서 양쪽은 당시엔 최첨단 무기인 전차와 항공기를 동원하는 새로운 전쟁을 시도했다. 이 내전은 장차 2차 대전에서 사용될 현대 무기와 기술을 앞서서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장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이 베를린과 모스크바의 전략가들은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까지 이 전쟁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 이유였다. 이 내전을 통해 전쟁은 대규모 항공력과 기동력이 동원되는 전격전으로 진화한다.
3년째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바로 그렇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와 현대전에서의 기동 문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드론과 항공 폭탄이 결합한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이 스페인 내전과 유사한 미래 강대국 전쟁의 전초라고 진단한다. 연구소는 과거에 전략적·작전적 수준에서나 가능했던 ‘정찰·타격 복합체’(RSC)가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술적 수준에서도 가능해졌다며 이를 ‘전술 정찰·타격 복합체’(TRSC)라고 불렀다. 이제 소규모 부대, 심지어 개인까지도 드론과 배회 폭탄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는 일인칭 관점(FPV)의 전투가 가능해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은 정밀한 정찰 데이터, 드론과 순항 미사일, 활공 폭탄, 전자전 능력을 결합하여 미세한 전투를 수행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여기에 충분한 항공 지원과 빠른 기동력까지 추가되는 전쟁이 바로 대만과 한반도에서 나타날 미래 전쟁이다.
안개가 걷히고 투명해진 미래의 전쟁터에서 외과 수술과 같은 정밀함과 신속한 기동력이 승부를 결정짓는 전쟁은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다. 만일 한국이 이스라엘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을 공격한다면 사흘 안에 북한 상공에 날아다니는 물체가 사라질 것이고, 일주일 안에 북한의 연안에 떠다니는 물체가 사라지며, 보름 안에 북한의 모든 땅에 굴러다니는 물체가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적은 비용으로 단시간 내에 전쟁은 깔끔하게 끝난다.
그러나 북한이 하마스나 헤즈볼라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정찰·타격 복합능력을 확보하게 되면 양상은 전혀 달라진다. 북한은 후방에서 한국군의 주공 전력의 측면이나 후방을 공격하고 전자적으로 교란을 시도하여 전쟁을 장기전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나 중동 전쟁을 뛰어넘는 장기 소모전이 되어 막대한 피해와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북한의 배후에 러시아가 버티고 있다면 전쟁의 양상은 더 복잡해진다. 북-러 군사협력이 심상치 않은 이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러시아에 대부대를 보내면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설령 돈이 된다고 해도 북한군을 총알받이로 내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군의 능력이 별것이 없고 사상자만 늘어나게 되면 김 위원장의 위신에도 심각한 타격이다. 이 때문에 낯선 전쟁터에 준비도 덜 된 북한군을 섣불리 투입할 것 같지는 않다. 반면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 적군 깊숙이 침투하여 소규모 유격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방의 위협 세력을 신속히 제거하고 위험 요인을 우회하여 후방으로 돌파할 수 있는 그런 능력 말이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군에서 더 미세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군사 기술과 지식을 혁신하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북한의 비정규전 수행에 적합한 공간이 사방에 널려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 모스크바와 베를린의 전략가들이 배우고 싶어 했던 것처럼 현대 전쟁에 관한 지식이 핵무기와 더불어 미래 전쟁의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루라도 빨리 끝나는 게 우리에게도 시급해졌다. 북한군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전에 그 기회를 없애버려야 한다. 우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현실성 없는 승리 계획에 동조하며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것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더 현명해 보인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정확히 그 반대 방향, 즉 대한민국의 안보 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하마스나 헤즈볼라와는 다르다는 상식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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