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로 돌아간 윤석열의 경제 낙관주의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이 ‘한강의 기적’을 다시 일으키는 중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지난 8월 말 국정 브리핑에서 그는 “우리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으며 “(수출과 성장률 등에서)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는 “블록버스터급” 수출실적 증가였다.
2개월여가 흐른 11월 초 현재, 기적이 실현되고 있는가? 그럴 조짐은 전혀 없다. 오히려 올해 연말과 내년 한국 경제를 덮칠 리스크들이 역력히 돋보이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의 출범은 꽤 장려(壯麗)했다. 2023년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사상 최악인 1.4%였다. 그런데 올해 1분기의 성장률이 무려 1.3%를 기록했다.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2010년대의 일부 시기처럼 연간 성장률이 3~4%대로 오를지도 몰랐다. 환호는 곧 잦아들었다. 2분기의 GDP가 1분기보다 오히려 0.2%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출이 증가 추세인데 GDP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 원인은 ‘국내 수요 부진’이었다.
GDP는 일정한 기간 특정 국가에서 ‘생산’한 상품(재화와 서비스)의 총가치다. GDP 성장은 해당국에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춘다는 의미다. 그 상품들은 어디로 팔릴까? 국내(내수) 아니면 해외(수출)다. 즉, 내수와 수출을 합치면 GDP를 대충 계산할 수 있다. 다만 그 수치에서 국내 수요자들이 매입한 ‘해외에서 생산된 상품(수입품)’의 가치는 빼야 한다. 다시 말해 GDP는 ‘내수’와 ‘순수출(수출-수입)’의 합이다.
올해 1분기엔 내수와 순수출이 함께 늘어났다. 2분기엔 순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내수 부진으로 한국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3분기인 지난여름에는 내수의 회복 조짐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었다. 지난 1월 3.2%에 달했던 인플레율(소비자물가 기준)이 7월(2.6%)과 8월(2.0%)을 거치며 9월엔 1.6%까지 떨어졌다. 유가 하락, 전기요금 동결 등 ‘공급 측 요인’ 덕분이었다. 소비자들이 물가하락으로 지갑을 열어 내수가 회복되는 한편 수출 증가세가 계속되면 올해 연간 성장률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나쁘지는 않은 2.4%(한국은행 예측)~2.6%(정부 예측)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10월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실질 GDP는 이런 기대를 부숴버린다. 3분기 GDP 성장률이 전기(2분기) 대비 0.1%에 그쳤던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했으나 그 폭이 너무 실망스럽다. 한국은행의 예측(0.5%)보다도 훨씬 낮았다.
그 이유를 위의 GDP 공식을 염두에 두고 분석해보자. 내수의 주체는 가계(민간소비), 정부(정부소비), 기업(설비투자), 건설업체(건설투자) 등이다. 3분기의 경우 2분기 보다 민간소비가 0.5%, 정부소비는 0.6%, 설비투자는 무려 6.9%나 증가했다. 건설투자는 2.8% 줄었다. 종합하면 내수는 어느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었다. 수출 부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에 비해) 수출은 자동차·화학제품 등을 중심으로 0.4% 감소하였으나, 수입은 기계 및 장비 등이 늘어 1.5% 증가했다.” 수출은 줄고 수입이 늘었따. 결과적으로 GDP 성장의 한 축인 ‘순수출’이 줄어든 것이다.
3분기의 GDP 성장에 각 부문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나타낸 한국은행의 도표가 있다. 이에 따르면 민간소비와 정부소비 그리고 설비투자는 3분기 GDP를 각각 전기 대비 0.2%포인트, 0.1%포인트, 0.6%포인트씩 올렸다. 그러나 건설투자는 3분기 GDP를 0.4%포인트 줄였고, 순수출(수출-수입)은 무려 0.8%포인트나 깎아내렸다.
10월25일 발표된 한화투자증권 리포트는 “수출과 건설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에 3분기 국내 성장이 “예상보다 약했다”라며 4분기(10~12월)에도 “수출 모멘텀 둔화 및 내수 회복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4분기 수출이 급등할 수도 있지 않은가? IBK 투자증권 리포트는 비관적이다. “최근 수출기업들의 체감경기 둔화와 미국 대선 등 여러 가지 불확실성, 향후 주요 교역국 성장률 둔화 우려 등을 감안하면 반등 폭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수출 경기로 위축된 심리가 내수 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쳐 경기 전반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결국 올해 연간 성장률은 정부(2.6%)와 한국은행(2.4%)의 예측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0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인 2%(OECD 추정)보다는 반드시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2%대 초반이 유력하다는 뜻이다.
올해도 30조원 세수 결손 예측
윤석열 대통령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은 무위로 돌아갔다. 오히려 올해와 연말에 포진한 리스크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준금리 문제다. 한국은행은 10월11일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3년 2개월 만이었다. 오는 11월28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내릴 수 있을까? 불투명하다. ‘환율 불안정’이 더 격심해질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 9월 중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빅컷)한 뒤에도 달러 가치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는 해당국 통화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연준의 빅컷 이후 미국 달러는 한국 원화 환산 기준 40~60원 정도 더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원화 가치 급락을 초래할 수 있다. 금융안정성 측면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는 위험하다. 자칫 ‘빌려서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세계 최악의 가계부채 비율이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률이 갑자기 망가져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둘째,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지난해 56조4000억원, 올해도 30조원 정도의 세수 결손이 예측되고 있다. 이를 메우기 위해 윤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환율 안정을 위한 기금), 주택도시기금 등에서 16조원을 빌려 투입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지방교부금을 줄이거나 예정된 정부 사업을 집행하지 않는 것으로 충당한다. 무질서한 재정 운용은 GDP는 물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장기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셋째, 한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충격들이다. 11월5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관세 대폭 인상, 미·중 무역 갈등의 극단화, 한국 등 대미 흑자 국가 압박 등 세계무역 질서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의 내년 수출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이럴 경우 국제 유동 자금들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달러 기반 자산으로 몰리기 마련이다. 달러 가치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급등하는 이유다. 더욱이 빅컷 이후에도 물가나 일자리 등 미국 경제지표가 계속 양호하게 나오면서 11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큰 폭의 금리인하는 없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유력하다. 이 또한 달러 가치를 떠받치고 있다.
이 밖에도 중동 갈등에 따른 유가 인상 가능성, 북한군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에 따른 안보 리스크 등 한국 경제에 만만치 않은 위험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경계심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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