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화를, 돈 많이 벌려고 하나?
웹툰의 시대다. 웹툰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 매출이 얼마다, 주가가 어떻다 하는 이야기를 먼저 접하게 된다. 어떤 작품이 재미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재미있는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가까이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다 보니 그들의 고민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했던 작가들의 고민은 어느새 ‘이걸 플랫폼이 좋아할까?’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랫폼이 줄 수 있는 기대수익에 비해 출판만화를 포함한 다른 만화시장의 기대수익은 보잘것없어졌다. 사실 한국 만화와 ‘자본’은 거리가 멀다. 물론 인세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 작가들이야 있었지만, 애초에 막대한 수익을 기대하고 들어오는 작가는 흔치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만화를, 돈 많이 벌려고 하나?
그 질문은 5년 전 홍콩에서 출발되었다.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이 다시 불붙으며 군대가 진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홍콩 시민들의 소셜미디어에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그때, (지금은 만화 관련 제작·교육·전시 등을 진행하는 회사가 된) 사이드비의 성인수 작가가 연락해왔다. 전화 너머로 성 작가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것이 〈하고싶은 만화〉의 시작이었다. 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목소리, 흘러가는 소리가 아닌 대화의 요청이자 무거운 침묵을 깨는 질문을 담은 만화.
하지만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전시를 기획했다. 2020년 ‘독립에서 독립하기(당시 다음웹툰)’에서는 독립 만화라는 말에서 독립하고자 작가 16명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독립 만화’를 그릴 것을 요청했다. 16개의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이 나왔다. 〈2021년 하고싶은 만화전〉에서는, 만화의 구성 요소인 ‘선’ ‘칸’ ‘말’ ‘빛’이라는 테마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무턱대고 오프라인 페어를 준비하기보다 만화를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SWA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공간을 제공해줬고, 2022년부터 ‘사이드비(SideB) 만화 사교 클럽’을 열 수 있었다. 금쪽같은 금요일 저녁,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전 예약을 하고 만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온 ‘어른’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만화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시작인 첫 회, 〈하고싶은 만화전〉의 마지막 퍼즐인 정다빈 PD가 기적처럼 사이드비의 문을 두드렸다. 이 모든 징검다리들을 건너오면서 〈하고싶은 만화전〉의 초기 기획이 만들어졌다. 만화가 주는 즐거움을, 만화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게 해주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 될까요?”
필자를 포함해 성인수, 정다빈까지 세 명이 모였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 만화페어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만화계의 사람들은 “오 멋진 아이디어다!”라고 맞아주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그런데, 이거 될까요?” 그럼 우리는 답했다. “그러게요, 됐으면 좋겠는데.”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공간을 제공해준들, 질문에 대한 답 없이는 시작할 수 없었다. 우리가 돈 말고 무엇을 위해 만화를 시작했지? 또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만화의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즐거운 대화 자리와 마찬가지다. 즐거운 대화가 설레는 건,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즐겁기 때문이고, 그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기본적으로 고독한 작업이다. 그 고독을 기꺼이 견디는 것은 만화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만화, 웹툰이 아닌 다른 형식의 만화, 그리고 독립 만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름도 ‘하고싶은 만화’라는 이름이 가진 설렘을 주지 못했다.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만화를 만들고, 그걸 가져와서 판매하며, 고립되어 있던 작가들을 한데 모아 서로의 얼굴을 확인시키고, 서로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를 씻고, 만화의 본질을 확인하는 자리가 필요했다. 〈2024 하고싶은 만화전〉의 기틀이 잡혔다.
그리고 다음, 한국에도 하고 싶은 만화의 계보가 있다. 독자에게 판매해야 의미가 있는 상업적 작품과는 달리 필요에 의해서 또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만들어낸 만화들. 1985년 만화가 9명이 모여 만든 〈아홉 번째 신화〉는 순정만화 잡지에 대한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가 모인 것이다. 1990년대 새로운 시도를 했던 작가들이 모인 〈만화실험 봄〉 〈새만화책〉 〈Sal〉과 같은 ‘하고 싶던’ 만화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올해 봄부터 참가 팀을 모집했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다. 오래 고립된 나머지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총 50개 팀을 모았다. 데뷔 20년이 넘은 작가부터 패기로 시작하는 창작팀까지 다양했다. 가장 어린 참여 작가는 이제 열두 살 초등학생이었다. 〈2024 하고싶은 만화전〉은 세대의 장벽, 언어의 장벽을 모두 뛰어넘어 만화라는 매체 하나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창작의 순간에는 혼자일지라도 그 이후엔 함께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지난 10월25일부터 사흘간 서울 성수동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2024 하고싶은 만화전〉이 개최됐다. 총 50개 테이블에 작가 115명이 참여했고, 2103명이 찾았다.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만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만화로 이루어진, 만화만을 위한, 만화만이 할 수 있는 전시, 아니 축제가 있다.
이재민 (서울웹툰인사이트 SWI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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