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돈줄’ 쥐고 활짝 핀 단체들 [언론 장악 카르텔 추적⑩]
〈시사IN〉과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5개 언론사가 현 정부의 언론 장악 실태를 추적 보도하는 ‘언론 장악 카르텔’ 시리즈를 함께 취재해 보도합니다.
“지금 정권이 교체되고 윤석열 정권이 가령 언론 탄압을 한다, 예를 들자면. 박민 (KBS) 사장이 언론 탄압을 한다 등등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뱀새끼가 있나요? (중략) 그다음에 할 일이 뭐냐. 예리한 칼로 뱀 대가리를 쳐야 됩니다 여러분! 한 방에 끝내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 이영풍 전 KBS 기자
“상대가 우리를 무력과 말로 제압하면서 공격해오는데, 말로 ‘이러지 마’ 이럴 시기는 지났다. 언론계에도 투쟁력 있는 전사가 필요하다.” - 석우석 공정언론국민연대 대외협력단장
“언론인총연합회에서 하는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 이게 어쩌면 대한민국이 공정한 언론으로 가기 위한 투쟁 대상을 뽑는 자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
11월7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 시상식 풍경이다. 축사에서도, 수상 소감에서도 ‘뱀 대가리 쳐야’ ‘한 방’ ‘투쟁’과 같은 거친 말이 쏟아졌다. 이날 시상식에는 MBC 사장 출신인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과 이상휘 국민의힘 미디어특위 위원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축하 화환을 보냈다.
이 행사는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언총)라는 단체가 주최했다. 주최 단체인 언총 소속 임원 6명이 대상과 공로상, 특별상 등을 나눠 받았다. 부문상으로는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가 단체상과 언론자유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주최 단체와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단체 및 개인, 축사를 맡은 국회의원 등은 그동안 〈시사IN〉 등 5개사 언론 장악 공동취재팀이 보도해온 윤석열 정부 ‘언론 장악 네트워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출범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생 단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우후죽순 생긴 이 단체들은 급속도로 몸집을 불리며 이와 같은 대규모 행사를 거듭 개최하고 있다. 〈시사IN〉 등 5개사 언론 장악 공동취재팀 취재 결과, 이들 단체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었다. 앞서 언총의 시상식 행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정부 광고 수수료를 받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도 제2차 단체지원 사업’으로 1980만원이 이 시상식 행사에 지원됐다. 이 같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은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 곳곳에서 일종의 관변단체 구실을 해온 신생 단체 여럿이 지원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공공 재원이 투입된 이들 행사의 성격 역시 정권 비판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등 노골적인 친정부 성향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한 해 예산 약 7억9000만원을 두 차례로 나눠 (상반기 1차, 하반기 2차) 차수별로 약 20개 단체에 지원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그동안 전체 예산 7억9000만원 중 83~87%는 현업 단체 및 학회에, 13~17%를 시민단체에 지원해왔다. 통상 기자협회, 사진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현업 단체의 정례행사에 예산 상당 부분이 고정비처럼 투입된다. 학술적 성격의 학회 행사 지원도 제외하면 시민단체 몫은 평균 1억원 안팎이다.
보수 단체에 쏠린 언론재단 지원
공동취재팀이 확인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단체지원 사업 공모 지원 대상과 규모를 보면, 올해 2000만원 이상 지원받은 단체 가운데 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협회가 아닌 곳은 자유언론국민연합과 공언련의 사업 조직인 공정미디어연대뿐이었다. 자유언론국민연합과 공언련은 앞서 공동취재팀이 추적 보도한 이른바 윤석열 정부 ‘언론 장악 네트워크’의 양대 축이 되는 시민단체다(‘단단하고 끈적하게 뭉쳤다··· 네트워크 전수 분석 해보니’ 기사 참조). 2000만원 미만 지원 역시, 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협회를 제외하고 이번 언론인 대상 시상식을 주최한 언총과 미디어연대 등 보수 언론·시민단체들이 휩쓸었다. 특히 이들 단체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지원을 신청한 사업들은, 단체명을 가리면 어느 단체가 제안한 사업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이들 단체의 모든 사업이 이른바 ‘가짜뉴스’ 관련 내용이었다. 주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 보도나,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겨냥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을 띠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자유언론국민연합의 ‘대한민국 선거와 가짜뉴스 백서 편찬(1400만원)’, ‘2024 가짜뉴스 시상식(3000만원)’, 공미연의 ‘22대 총선 불공정방송 팩트체크 백서 발간(1400만원)’, ‘허위·조작정보 근절 위한 제도개선 방안(680만원)’ 등이다. 오는 12월 개최 예정인 가짜뉴스 시상식의 경우, 지난해 행사(3000만원 지원)에서는 MBC의 ‘윤 대통령 비속어 보도’, 장경태 의원의 ‘김건희 여사 빈곤 포르노 비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보도’ 등을 ‘상반기 10대 가짜뉴스’로 선정한 바 있다.
800만원을 지원받은 미디어연대의 ‘미디어혁명 토론회: 한국 언론, 제4부로서의 역할과 실천과제’에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참여해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장악했다”라는 발언을 했다. 미디어연대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지낸 단체다. 680만원을 받아 인공지능과 미디어 플랫폼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미디어미래비전포럼은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고문으로 있다.
보수 언론 단체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지원이 집중된 건 2023년 6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대규모 인사가 나면서부터다. 올해 3월 재단의 주요 본부장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출신 인사로 바뀌고 4월에는 재단 내 ‘가짜뉴스 신고센터’가 설립되었으며, 이 시기 언론재단은 ‘언론 장악 첨병기지가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10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공영방송 이사 해임 등을 처리한 김효재 전 위원이 언론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들 단체에 대한 첫 지원이 결정된 ‘2023년 단체지원(2차) 심사회의’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대규모 인사가 단행된 직후 열렸다. 2023년도 3월(1차)까지 재단 지원을 받던 바른지역언론연대, 언론인권센터, 자유언론실천재단,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등의 단체는 2023년 6월(2차)부터 지원이 끊기거나 줄었다. 2024년도엔 보수 단체들이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대까지 총 1억740만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시민단체 몫 지원 예산(1억여 원)이 모두 보수 단체에 쏠렸다는 뜻이다.
보수 시민단체에 지원이 쏠리기 시작한 ‘2023년 단체지원(2차) 심사회의’는 2023년 6월23일 열렸다. 공모에 참여한 단체 가운데 상위 20곳을 추려 지원 단체를 최종 확정하는 자리였다. 공동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회의록을 보면, 회의 중 지원 단체 선정에 정치적 편향성 문제가 거론됐다.
회의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행사 지원 최대 한도인 5000만원을 써낸 자유언론국민연합의 ‘가짜뉴스 근절 범국민 캠페인, “2023 가짜뉴스 시상식”’이 지원 대상 범위에 있는 17위에 오르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 한 명이 “단체가 제출한 계획서는 부실하고 정파성, 정치적 편향성을 띠고 있다”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이 문제 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논의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심사위원 A씨는 공동취재팀에 이렇게 말했다. “계획서에 가짜뉴스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내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과도한 편향성이 있는 것 같아서 ‘이 단체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웹사이트를 한번 보시라. 정치적 편향성에서 좀 그렇다’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나 별다른 토론이 이뤄지지 않아서 다음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이 회의록은 한 차례 수정된 바 있다. 최초 회의록에는 A 심사위원의 정파성, 정치적 편향성 지원에 대한 우려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짜뉴스 시상식이라는 사업명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단체가 적절한 내용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단이 잘 안내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발언은 수정된 회의록에서 “가짜뉴스 관련 논의가 최근 정파적 단체에서 자의적으로 주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단에서 신청 단체가 정파성을 띠지 않는지 검증해보고, 가짜뉴스 시상식도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안내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로 변경됐다. 자신의 실제 발언이 회의록에서 ‘순화’되어 적힌 것을 확인한 A 심사위원이, ‘정파성’ 지적이 분명히 기재될 수 있도록 수정 요청을 했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이를 반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파성 단체’ 지적에 회의록 수정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단체지원 심사위원회는 총 5명으로 구성된다. 언론재단 소속 미디어본부장과 미디어진흥실장이 맡는 내부위원 2명, 외부위원 3명 등이다. 외부위원은 언론재단 내부에서 선정한다. 재단의 기획예산총괄팀이 수십~수백 명의 ‘심사위원 풀(pool)’을 관리하고, 필요한 인원의 3배수를 무작위로 추천하면 일정이 맞는 인물을 섭외하는 식이다. 이 풀부터 정권 입맛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여지가 크다. 김효재 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올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체) 정치 성향에 따라 지원이 편중되는 게 온당하냐”라는 질문에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심사위원이 다르듯, 지금의 심사위원도 다르다”라고 답했다.
심사위원회 구성은 심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은 “언론재단 미디어본부장과 미디어진흥실장 2명이 당연직으로 들어간다. 만약 어떤 단체를 빼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점수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앞서의 2023년 2차 심사 회의에서 비슷한 정황이 확인된다. 공동취재팀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심사집계표에 따르면, 특정 위원이 보수 성향 유사 언론 단체들에게 거듭 높은 점수를 줬다. 당시 D 심사위원은 미디어연대 행사와 자유언론국민연합 행사에 모두 만점에 가까운 92점을 줬다. 행사의 공익성은 40점 만점에 37점에 달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인 2022년 상위권 점수를 받았던 한국PD연합회 ‘글로벌 콘텐츠 컨퍼런스’ 행사에는 76점으로 최하점(공익성 28점)을 줬다. 이 같은 흐름은 2024년도 단체지원 심사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앞서의 언총 시상식 행사에 공익성 40점 만점을 준 E 심사위원은, 2022년 1차 사업에서 14위로 선정된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행사에는 최하점인 28점을 줬다.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 소속으로 당연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미디어본부장은 지난해 4월 임명된 남정호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다. 남정호 미디어본부장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9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2023년 디지털 뉴스 리포트’를 번역 출간할 때 두 쪽 분량의 한국 파트 분량을 빼고 공개하도록 지시한 인물이다. 당시 삭제한 내용 중에 MBC가 언론매체 신뢰도 설문에서 조사 대상 매체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실려 있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남정호 본부장은 정파성 우려가 있는데도 특정 단체들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심사 신청자료로 판단했고 다른 이유는 없다”라고 밝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원하기 시작한 단체들의 행사는 정부 비판 보도 견제에 집중되어 있다. 2023년 9월 자유언론국민연합 주최 행사에선 ‘10대 가짜뉴스 시상식’이 열렸는데, MBC의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보도,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의혹 등 윤석열 정부를 비판한 보도들이 가짜뉴스로 선정됐다.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거들고 있다. 올해 7월 발간된 가짜뉴스 백서 〈가짜뉴스로 본 공영방송의 내일〉 머리말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은 방송 장악 3법을 통해 본인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키며 공영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그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라고 썼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도 “우리는 따져 물어야 한다. 왜 공영방송이 좌파의 가짜뉴스 확성기로 쓰이고 있는지. 왜 항상 공영방송이 편파 조작 논란이 있을 때마다 그 중심에 서 있는지”라고 썼다.
복수의 언론재단 관계자는 이제껏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이 같은 특정 정파 편향 행사를 지원한 전례가 없다고 말한다. 김성재 전 언론재단 미디어본부장은 공동취재팀에 “정치적 성향이 강한 행사나 그러한 단체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2022년도 1차 지원 회의록에서도 확인된다. 회의록을 보면, 당시 심사에 참여한 한 심사위원은 “사업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 시의성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정파성 있는 사업은 최대한 배제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단체지원 사업 심사와 선정 결과는, 이 재단이 정부 비판 언론을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무엇을 진흥하고 싶어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형배 의원은 “언론재단이 특정 정파 혹은 정권에 이른바 하수인 노릇을 하기로 한 거고, 이 과정에서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결과다. 이렇게 되면 특정 정파를 대변하는 언론은 보호 속에서 더 성장을 하고, 공공성을 중시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은 대거 위축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공론장 형성 자체가 처음부터 장애물을 만나서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언론 생태계에 공적 견제 같은 기능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론 장악 공동취재단:문상현(시사IN)·박종화·연다혜(이상 뉴스타파)·박재령(미디어오늘)·신상호(오마이뉴스)·박강수(한겨레) 기자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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