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쇼크] 꿈의 비만약 위고비, 만성 통증도 잡는다
위고비 성분 GLP-1 투여하면 통증 줄어
통증 유발하는 신경세포 수용체 차단
‘꿈의 비만 치료제’로 불리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통증 만병통치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연구진이 진행한 동물실험에서 만성 통증과 급성 통증을 줄이는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상용화되면 중독 위험이 있는 마약성 진통제의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천대 의대 생리학교실 박철규, 김용호 교수 연구진은 “비만 치료제 성분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이 통증 완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고, 같은 효과를 내는 유망 물질도 찾았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실험 및 분자 의학’에 지난 1일 실렸다.
위고비는 GLP-1을 모방한 비만 치료제다. GLP-1은 식사 후 분비돼 포만감을 유도하고 식욕을 줄이는 호르몬이다. 동시에 혈당 수치도 조절한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처음에 같은 성분의 당뇨 치료제인 오젬픽을 개발했지만, 나중에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하고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출시했다.
가천대 의대 연구진은 동물이 먹이를 먹으면 통증을 덜 느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식사를 한 듯 포만감을 유발하는 GLP-1이 통증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진은 생쥐 5마리에게 GLP-1을 투여한 후 고온 패드 위에 있는 시간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GLP-1을 투여한 생쥐는 소금물을 준 다른 생쥐보다 1.25배 더 오래 고온 패드에 발을 올려놓았다. 통증을 덜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GLP-1이 어떻게 통증 완화 효과를 내는지 신경세포 활동을 분석했다. GLP-1은 신경세포에서 통증을 유발하는 TRPV1이라는 수용체를 차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고가의 비만 치료제를 대신해 같은 효과를 낼 합성물질도 찾았다. GLP-1에서 신경세포 수용체에 결합하는 부분을 확인한 다음, 이 분자의 합성 버전인 엑센딘(Exendin) 3-93을 생쥐 6마리에 투여했다. 그러자 역시 다른 쥐보다 뜨거운 광선으로부터 발을 떼기까지 시간이 1.25배 걸렸다.
엑센딘 9-39는 쥐에서 만성 통증을 포함해 신경통, 염증성 통증 등 다양한 통증 치료에 효과가 있었다. 엑센딘 3-93의 치료 효과는 최대 2시간 동안 지속됐다. 엑센딘은 GLP-1 일부만 모방한 물질이라 생쥐에서 혈당 수치를 낮추거나 식욕을 억제하는 등의 대사 효과는 보이지 않았다. 김영호 교수는 지난달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신경과학회 학술행사에서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엑센딘 3-93이 TRPV1을 표적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TRPV1에 작용하도록 설계된 약물들이 있었지만, 체온을 위험할 정도로 높이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가천대 연구진은 엑센딘 9-39로 치료한 쥐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엑센딘 9-39를 세 조각으로 잘랐을 때 그중 엑센딘 20-29가 TRPV1에 특이적으로 결합해 GLP-1 수용체 기능을 방해하지 않고 급성, 만성 통증을 모두 완화했다”며 “엑센딘 20-29를 유망한 치료 후보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위고비는 비만뿐 아니라 지방간염과 심장병, 관절염에서 우울증, 알츠하이머 치매, 약물 중독 같은 뇌 질환까지 치료 효과를 보였다. 과학자들은 GLP-1이 뇌 전체를 표적으로 삼아 다른 효과도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이번에 통증 치료제로도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국내 연구진은 비만 치료 성분의 일부만으로도 통증 치료 효과를 확인해 비싼 비만약 대신 같은 원리의 저렴한 통증 치료제를 개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통증 치료제가 상용화되면 오피오이드(아편 유사체)와 같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은 미국에서 25~54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꼽히면서 ‘오피오이드 위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참고 자료
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12276-024-01342-8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