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럽 맨’ 뮐러, 세계 최고 ‘텃새’로 날아올라[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난 ‘철새’가 아니다.”
‘원 클럽 맨(One Club Man)’ 토마스 뮐러가 했음 직한 말이다. 오로지 독일 분데스리가의 최고 명가인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축구 열정’을 불살라 온 뮐러로선 ‘저니맨(Journeyman)’의 생리가 이해되지 않을지 모른다.
프로 스포츠는 비정하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만큼 한 팀에서 오래도록 선수 생활을 이어 가기는 무척 어렵다. 자의든 타의든 둥지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클럽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기는 그래서 더욱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프로 스포츠는 또한 한마디로 ‘돈’이다. 불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처럼 돈을 좇아 보금자리를 옮김은 프로 선수의 생리다. 21세기에 들어와 20여 년간 세계 축구의 쌍벽을 이뤘던 불세출의 두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37·인터 마이애미 CF)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알나스르)가 입증하는 사실이다. 아직도 유럽 빅5 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실력을 지녔음에도, 그들이 끝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와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밑바닥엔, 뿌리치기 힘든 ‘돈의 유혹’이 존재했다.
현대 축구에선, 갈수록 충성도(Loyalty)가 낮아짐은 보편화한 현상이다. 더 좋은 기회와 많은 돈을 좇아 끊임없이 새 둥지를 찾는 철새가 대부분인 세상이다.
그러나 이런 주류를 거스르는 텃새도 있다. 자신이 애정을 쏟아 온 클럽을 향한 ‘일편단심’의 충성심을 보이는 유조(留鳥)도 찾아볼 수 있다. 마치 돈에 초연한 듯 이들은 한 클럽에서만 머무르며 프랜차이즈 스타 나아가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파올로 말디니와 프란체스코 토티가 그 대표적 예다. 선수 시절 세계 으뜸의 수비수로 손꼽혔던 말디니는 이탈리아 세리에 AC 밀란에만 둥지를 틀고 25년(1984~2009년)간 활약했다. 유소년 시기(1978~1984년)까지 합하면 AC 밀란과 연(緣)은 31년에 이른다. ‘로마 제왕’이었던 토티도 마찬가지다. 유소년 시절(1989~1992년) 몸담었던 AS 로마에 남기 위해 숱한 영입 제안을 뿌리치는 엄청난 충성심을 보였다. 역시 25년간(1992~2017년) AS 로마에서만 열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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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러, 16년 4개월여 오로지 바이에른 뮌헨에 충성심… 로페스와 코케, 공동 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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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에도 말디니와 토티처럼 외곬에 집착하는 선수가 있을까? 있다. 그 대표적 스타플레이어가 뮐러다. 통계와 이적 뉴스 등을 제공하는 웹사이트인 트랜스퍼마크트가 유럽 5대 리그에서 뛰는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뮐러가 한 팀에 가장 오래 몸담은 존재로 나타났다(표 참조).
뮐러는 열한 살이 되던 해(2000년)에 바이에른 뮌헨의 둥지로 파고들었다. 이때부터 8년간 유소년팀에서 기량을 기른 뒤 2008-2009시즌 분데스리가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데뷔 무대는 2008년 8월 15일(이하 현지 일자) 함부르크 SV전이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16년 4개월 13일 동안(11월 13일 기준) 한결같이 바이에른 뮌헨을 위해 헌신해 왔다. 각종 대회를 통틀어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722경기를 소화했을 정도다.
뮐러와 똑같은 기간 한 둥지에서만 날갯짓한 철새가 둘 더 있다. 안토니 로페스(34·올랭피크 리옹)와 코케(32·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뮐러와 매한가지로, 16년 4개월 13일간 프랑스 리그 1의 올랭피크 리옹과 스페인 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만 존재해 왔다. 단계를 거쳐 1군 마당에 뛰어든 점도 빼닮았다. 로페스는 유소년팀(2000~2008년)→ 리옹 B(2008~2012년)→ 리옹(2012년~)의 단계를, 코케는 유소년팀(2000~2008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B(2008~2011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2009년~)의 단계를 각각 거쳤다.
4위도 2명이었다. 바스크 선수만 기용하는 정책으로 유명한 아틀레틱 빌바오에 보금자리를 꾸린 오스카르 데 마르코스(35)와 이니고 레쿠에(31)다. 둘은 공동 선두 세 명보다 딱 1년 적은 15년 4개월 13일간 아틀레틱 빌바오에 몸담아 왔다.
바이에른 뮌헨엔 충성심이 높은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역대 세계 최고 GK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 마누엘 노이어(38)다. 샬케 04(2005~2011년)를 거쳐 바이에른 뮌헨에 둥지를 튼 노이어는 2011년 7월 1일부터 다른 곳으로 날아갈 줄을 모른다.
월드 스타로서 이름을 떨친 제이미 바디(37·레스터 시티)와 루카 모드리치(39)는 각각 10위와 15위에 자리했다. 바디는 12년 4개월 13일간 레스터 시티에 헌신했고, 모드리치는 12년 2개월 17일간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 둘 모두 노이어처럼 원 클럽 맨은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뮐러가 2024-2025시즌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을 떠날지 모른다”라는 ‘소문’이 솔솔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뮐러의 계약 기간은 2025년 6월 30일까지다. 아직 구단이 계약 연장과 관련해 투명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데서 비롯한 예측인데,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과연 뮐러는 이제껏 보였던 충성심을 저버리고 바이에른 뮌헨을 떠날까?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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