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대학, 공학 전환은 답이 아니다 [권김현영의 사건 이후]

한겨레 2024. 11. 15.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본관 앞에 학교 쪽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벗은 ‘과 점퍼’가 놓여 있다. 이날 학생들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쪽에 ‘공학 전환 완전 철회’를 비롯해, 총장직선제 등을 촉구하며 수업 거부 및 시위 등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지난 11일 동덕여자대학교 학생 1천여명은 대학본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과잠’ 시위, 점거 농성, 연대 트럭, 근조 화환, 릴레이 대자보까지 최근 들어 보기 드문 학원 총투쟁의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쪽은 공학 전환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된 바는 있지만 공식 안건은 아니었다며, 학생들의 항의를 폭력 시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공식 안건이 되는 순간 공학 전환이라는 방향키를 돌리기는 어려워진다. 학생들은 속지 않았다. 동덕여대뿐만 아니라 다른 여대에서도 일부 단과대학의 공학 전환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여대의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여자대학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연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공학 전환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공학 전환은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결과다. 일례로 1990년대 여자대학의 공학 전환은 시대의 흐름이었다기보다는 잘못된 고등교육 정책의 여파였다. 1990년대 졸업정원제 폐지와 대학설립준칙의 도입으로 4년제 종합대학이 1990년에서 2005년 사이 107개에서 173개로 급증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비수도권 여자대학은 생존을 위해 공학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공학으로 전환했다고 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과 대학 서열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대학 정책 그 자체에 있었다. 공학 전환 여부와 관계없이 비수도권 대학은 모두 위기에 내몰렸다.

현재는 어떨까?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향후 15년 안에 대학 정원의 숫자가 급감하는 상황을 주요 근거로 든다. 물론 대학이 처한 구조적 조건의 변화와 생존경쟁은 여자대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학 전환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아무도 이 위기를 돌파할 만한 정확한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2000년 이후 대학 취학률이 50%를 넘기면서 고등교육이 보편화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학은 줄곧 위기였다. 보편화 이후의 방향키를 제안하는 이들은 대체로 학생들과의 민주적 소통과 지역사회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특성화’를 제안한다. 여자대학은 이미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이라는 특성화 요소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공학 전환은 오히려 그동안의 여자대학이 쌓아 올린 유산을 스스로 내던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최근 몇년간 언론에서는 ‘여대 기피론’과 ‘여대 무용론’을 번갈아가며 공론장에 띄웠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를 종합하면 대략 세가지이다. 첫째, 여자들에게도 고등교육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진 상황이므로 여대는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 둘째, 현재 수도권에 집중된 여대로 인해 역차별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남학생들이다. 셋째, 기업과 사회도 여대 출신을 기피한다. 하지만 이 전제는 부분을 전체로 호도하고 각각의 명제가 서로의 전제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비논리적 혐오 담론이다. 기업과 사회가 정말 여대를 기피한다면 그것은 여대에 대한 차별이 현존한다는 얘기이므로 여대 자체가 남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공학 대학은 교수자의 성비부터 리더십의 성비, 졸업생 진로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여대의 사명은 소멸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 동안 여자대학은 여성에게 닫힌 문호를 개방하는 선구자의 길에서 시작해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기여를 통합하고 촉진하는 장소로 기능을 수행해왔다. 현재 여대 무용론이나 기피론과 같은 비논리적인 여자대학 혐오에 맞서는 ‘안전한 여성 공간’에 대한 강조가 대항 담론으로 등장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보편화 시대에 여자대학의 사명은 여자대학에서만이라도 안전할 ‘최소한의 권리’에 멈출 수 없다. 여성의 생존과 안전은 여자대학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자산으로서 여자대학의 가치는 생존 그 이상을 꿈꿀 수 있는 해방의 장소였을 때 미래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여자대학은 대학 서열화로 줄 세우지 않는 ‘다른 리그’의 가능성과 가치를 만들어내왔다. 공학 전환은 답이 아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