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단 '돈줄' 힘 받은 보수단체, 가짜뉴스 맞선 '언론 전사' 양성 중

박재령 기자 2024. 11.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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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장악 카르텔 추적 ⑪] 5개 언론사 공동기획
언론재단, 지원 심사 과정서 나온 '정파성 지적' 회의록 삭제
'MBC 신뢰도 1위' 삭제했던 재단 미디어본부장도 심사 참여
민형배 의원 "언론재단이 특정 정파 혹은 정권 '시녀' 역할"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제2회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강수 한겨레 기자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강행과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는 그 정점에 있습니다.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 시사인,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5개 언론사는 각 사 울타리를 넘어 진행하는 '진실 프로젝트' 첫 기획으로,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실태를 추적하는 '언론장악 카르텔' 시리즈를 함께 취재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지금 윤석열 정권이 언론탄압을 한다, 박민 (KBS) 사장이 언론탄압을 한다 등등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뱀새끼가 있나요? (중략) 할 일이 뭐냐. 예리한 칼로 뱀 대가리를 쳐야 됩니다. 한방에 끝내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영풍 전 KBS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원한 11월7일 '제2회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 시상식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자금 지원으로 특정 진영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보수성향 언론단체들의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공동취재단 취재 결과, 언론재단은 지원 심사 당시 사업의 정파성 지적 부분을 회의록에서 삭제하고 재단 소속 미디어본부장이 회의에서 사업을 옹호하는 등 보수단체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2023년 6월 2차 언론재단 단체지원 회의록 분석해 시민단체 자유언론국민연합이 5000만 원을 신청한 '2023 가짜뉴스 대상 시상식'을 놓고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A심사위원이 “가짜뉴스 관련 논의가 최근 정파적 단체에서 자의적으로 주장되는 경우가 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언론재단, 심사위원 우려에도 '보수단체 가짜뉴스 행사' 지원 확대]

공동취재단 취재 결과 당시 회의에서 “재단이 이러한 행사를 지원함으로써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현 정부도 가짜뉴스 대응을 강조하는 터라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인물이 남정호 언론재단 미디어본부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A심사위원의 말이 초기 회의록에서 '가짜뉴스 시상식이라는 사업명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로 순화됐다가 이후 A심사위원의 수정 요청이 나오자 다시 바뀐 것도 추가로 확인됐다.

▲ 공동취재단이 입수한 언론재단 초기 회의록.
▲ A심사위원의 요청 이후 문구가 수정됐다.

A심사위원은 공동취재단과 통화에서 “가짜뉴스 어쩌고 하는 단체를 보니 좀 과도한 편향성이 있는 것 같아 '이 단체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웹사이트를 한 번 보시라. 정치적 편향성이 있어서 (지원하기) 좀 그렇다'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A심사위원은 “토론이 없었다. (평가 항목 중 하나인) 공익성 안에는 사회 문제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거나 이런 세부적인 것들이 있다”며 “그런 것들을 기본으로 하면 정치적 편향성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인식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31일 열린 '2023 상반기 10대 가짜뉴스 시상식&기념토론회'. 사진=미디어오늘.

자유언론국민연합은 언론재단으로부터 3000만 원 지원을 받아 2023년 8월과 12월 두 차례 가짜뉴스 시상식을 개최했다.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 △청담동 술자리 의혹 보도 등이 주요 가짜뉴스로 선정됐다. 오는 12월에도 재단이 3000만 원을 지원한 '2024 가짜뉴스 시상식'이 예정된 상태다.

남정호 본부장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난해 3월 언론재단 미디어본부장에 취임했다. 남 본부장은 지난해 재단이 발간하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리포트' 한국어판 보고서에서 대한민국 부분을 빼라고 지시해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삭제를 지시한 부분엔 MBC가 신뢰도 1위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남 본부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에 “한국 부분을 뺀 이유는 제가 취임하고 나서 조사대상 표본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쟁력 있는 전사 필요하다” 정치적 행사에 언론재단이 왜?

'미디어연대', '자유언론국민연합', '공정미디어연대', '미디어미래비전포럼',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 윤석열 정부 이후 언론재단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지원한 단체들이다. 이들이 지원받기 시작한 시점은 2023년 6월인데 언론재단은 2023년 3월 전임 정부 이사 임기가 끝나고 새 이사진으로 교체되면서 '친정권 성향으로 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사 이후 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센터'가 설립되고 국정홍보성 뉴스레터가 발행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충격적 인사' 발표에 국정홍보 레터까지…언론재단의 '변신']

▲ 2023년 6월 이후 언론재단이 지원한 주요 사업 목록. 그래픽=안혜나 기자

재단이 지원한 보수성향 단체들의 행사는 정부 관계자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로 참석했다. 2023년 8월 자유언론국민연합 주최 가짜뉴스 시상식엔 박보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축사에 나섰으며 지난해 'KBS 근조화환 투쟁'을 지원한 유튜버 '한동훈삼촌tv', 이영풍 전 KBS 기자 등이 공로감사패를 받았다.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선 김장겸 전 MBC 사장(현 국민의힘 의원)이 좌장을 맡았다.

이들 행사에선 정파성 짙은 내용들이 다수 등장했다. 지난 7월 자유언론국민연합이 발간한 '가짜뉴스로 본 공영방송의 내일'(언론재단 1400만 원 지원) 머리말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은 '방송장악 3법'을 통해 (공영방송을) 본인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키며 '공영'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그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장겸 의원도 “우리는 따져 물어야 한다. 공영방송이 좌파의 가짜뉴스 확성기로 쓰이고 있는지. 왜 항상 공영방송이 편파 조작 논란이 있을 때마다 그 중심에 서 있는지”라고 주장했다.

▲ 언총 '제2회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 시상식에 화환을 보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사진=박재령 기자

지난 7일 열린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 '제2회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화환을 보냈다. 이 행사에도 김장겸,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이 참석해 축사에 나섰다. 단체상을 받은 공언련 석우석 대외협력단장은 “투쟁력 있는 전사가 필요하다.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는 투쟁력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상을 받은 조광형 뉴데일리 기자는 “전사가 돼서 투쟁 일선에 맹렬히 싸움하는 멋진 기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되었던 김성재 전 언론재단 미디어본부장은 통화에서 “정치적 성향이 강한 행사는 지원하지 않았다. 회의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고 그런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다. 2022년 1차 지원 회의록에 따르면 한 심사위원은 “사업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시의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면서 “정파성 있는 사업은 최대한 배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3년도 1차(3월)까지 재단 지원을 받던 바른지역언론연대, 언론인권센터, 자유언론실천재단,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등 단체는 남 본부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2023년 2차(6월)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언론재단은 통상적으로 약 7억9000만 원의 예산 중 83~87%는 현업단체 및 학회에, 13~17%를 시민단체에 지원했는데 2024년도엔 시민단체 몫 예산이 모두 보수단체에 쏠렸다는 지적이다.

2020년 이후 '미디어인권 캠페인', '언론보도 댓글관리를 통한 2차 피해 예방 캠페인' 등의 사업으로 매해 단체 지원을 받았던 언론인권센터의 허찬행 이사는 “정파성 강한 행사는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당이나 정치집단에게 지원을 받거나 그러한 후원을 받아 치르면 될 것”이라며 “(재단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행사를 개최할 경우 여러 제약과 한계가 있다. 재정 부담 때문에 단체 내부 자원 중심으로 세미나를 하게 되고, 공론화가 잘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사과정 뜯어보니 특정 위원이 보수단체에 '공익성 만점'

언론재단 단체지원은 외부위원 3인, 내부위원 2인 등 총 심사위원 5인의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여기서 외부위원은 언론재단 내부에서 선정한다. 기획예산총괄팀이 수십~수백 명의 '심사위원 풀(pool)'을 관리하고 필요한 인원의 3배수를 무작위로 추천하면 미디어지원팀이 순서대로 일정이 되는 인물을 섭외하는 식이다.

우선 이 심사위원 풀부터 정권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우려가 있다. 민형배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단체) 정치 성향에 따라 지원이 편중되는 게 온당하냐”고 묻자 김효재 언론재단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심사위원이 다르듯 지금의 심사위원도 다르다”고 답했다. 김성재 전 본부장은 이 두고 “(재단 내부에서) 미디어진흥실장, 미디어본부장 두 사람이 들어간다. 그 사람들이 만약 '어떤 단체는 빼야겠다' 마음 먹으면 점수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 2024년도 단체지원 심사집계표 갈무리.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단의 심사집계표를 살펴보면 실제로 특정 위원이 보수성향 단체들에 거듭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2023년 2차 지원 때 D심사위원은 미디어연대 행사와 자유언론국민연합 행사에 모두 만점에 가까운 92점을 줬고 특히 공익성에 대해 40점 기준 37점을 줬다. 다만 최종 선정에서 최고/최저 점수는 계산에서 제외된다.

2024년 2차 지원 때는 E심사위원이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 행사에 공익성 40점 만점을 준 반면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 행사엔 28점 최하점을 줬다. 남정호 본부장은 정파성 우려에도 특정 단체들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심사 신청자료로 판단했고 다른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민형배 의원은 “언론재단이 특정 정파 혹은 정권의 이른바 시녀 역할을 하기로 작정한 것”이라며 “공적 기능을 수행해 온 (시민)단체들이 선정될 수 없는 구조를 재단이 만들어 놓고 '정해진 틀에 따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단이 단체지원 심사위원 선정 과정을 시민사회에 넘기거나 심사위원회 구성 자체를 중립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공적 자원을 특정 정파, 심지어 특정 언론을 공격하는 데 쓰고 있다는 건 국가 기능을 훼손하는 가장 못된 방식”이라고 했다.

언론장악 공동취재단 : 미디어오늘·뉴스타파·시사IN·오마이뉴스·한겨레
취재 : 박재령(미디어오늘), 박종화·연다혜(뉴스타파), 문상현(시사IN), 신상호(오마이뉴스), 박강수(한겨레) 기자.

▲ 언론장악 공동취재단 : 미디어오늘·뉴스타파·시사IN·오마이뉴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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