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펠로시, 2년 뒤 또 출마?… 선관위에 재선 서류 제출
낸시 펠로시(84) 민주당 하원의원이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2026년 선거 출마 선언문을 제출한 것으로 14일 확인했다.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수 있지만 펠로시 측이 다음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 20선에 성공한 펠로시가 2년 뒤 여든여섯 나이에 21선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펠로시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은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을 지낸 정계의 거물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월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대통령 후보직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1940년생인 펠로시는 이달 5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캘리포니아주(州) 11구 연방 하원선거에서 개표율 92% 현재 81.3%의 득표율을 얻어 20선을 확정지었다. 하원은 임기가 2년이다. 그런데 당선이 확정되고 이틀 뒤인 7일 FEC에 2026년 선거 출마와 관련된 문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는 서류에서 ‘낸시 펠로시 포 콘그레스’란 단체를 2026년에 자신의 선거 운동을 대표하는 공식 단체로 지정한 것이다. 펠로시는 지난 9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이번이 마지막 임기인가’라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나는 그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다.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싸우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운명처럼 임무가 주어져 나를 부른 것”이라고 했다. 계속 정계에 남을 뜻을 시사한 것이다.
펠로시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장과 연방 하원을 지낸 토머스 달레산드로 주니어의 고명딸로 태어나 정치와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스물세 살 때 벤처 캐피털 사업가인 폴 펠로시와 결혼해 전업주부로 다섯 아이를 키우다가 막내가 고교생이던 47세에 연방 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이 됐다. 정치인 집안에서 자라난 데다 남편의 재력과 인맥 도움도 받았지만, 특유의 정치적 감각과 열정적 의정 활동으로 관록의 정치인이 되면서 두 차례 하원의장(2007~2011년, 2019~2023년)까지 지냈다.
그러나 여든을 넘기면서 주변에서 정계 은퇴와 지역구 승계 가능성 등이 수차례 거론됐고, 2022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택에 자신을 노리고 침입한 괴한의 공격에 남편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건강과 인지력 논란을 일으키는 고령 정치인들이 젊은 정치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펠로시는 결국 의회 잔류를 택했다.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중도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음에도 텃밭을 대거 내주면서 트럼프에게 참패했다.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 모두 장악하면서 더욱 강력해질 트럼프 2기에 대한 견제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정치인 펠로시가 당내 구심점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펠로시의 정치적 기반인 샌프란시스코의 지역 언론들은 “트럼프의 재집권이 펠로시가 다음 선거에도 도전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펠로시는 트럼프 1기 때 민주당 진영의 대표적인 ‘투사’로 각인됐다. 야당 소속 하원의장이자 의회의 1인자로 트럼프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2020년 트럼프의 의회 국정 연설 당시 뒤편 의장석에 앉아 있던 펠로시는 트럼프가 연설을 마치자 눈앞에서 원고를 찢어버렸다. 이 모습은 지금도 소셜미디어 등에서 주기적으로 소환되는 장면이 됐다. 한 해 전 트럼프 국정 연설에서는 펠로시의 ‘물개박수’가 화제였다. 트럼프가 80분 연설 말미에 “우리는 복수, 저항, 보복의 정치를 거부해야 하며 무한한 협력, 타협, 공동선의 가능성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자 펠로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트럼프 쪽으로 두 팔을 쭉 뻗어 박수를 친 것이다. 미 언론들은 마치 물개가 앞발을 파닥거리는 듯한 모습의 이 박수에 대해 조롱과 경멸의 의미가 담겼다고 전했다. 펠로시의 딸 크리스틴도 “이날 밤 엄마의 표정은 내가 10대 때 ‘너도 네가 잘못한 걸 알지’라며 짓던 표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펠로시를 트럼프는 그냥 두지 않았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유세 때마다 막말을 이어갔는데, 펠로시가 주요 공격 대상 중 한 명이었다. 트럼프는 이달 5일 미시간주(州) 그랜드래피즈에서 가진 대선 마지막 유세에서 펠로시에 대해 “사악하고 역겹다”면서 여성에 대한 대표적인 멸칭인 ‘비치(bitch)’를 입모양으로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b’로 시작하는 단어지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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