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호 경찰청장 "범죄자가 잘먹고 잘사는 것 용납 못해…자금원 확실히 끊겠다"
"범죄를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자금원을 끊는 것이다. 수사에 있어 범죄 수익을 국가에서 몰수·추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범죄 생태계를 끊어버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범죄행위자가 처벌이 끝나고 잘 먹고 잘 사는 건 우리 사회가 용납해선 안 된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피의자 검거만큼 범죄 의지를 꺾어버리는 '범죄생태계' 박멸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범죄자 처벌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부당하게 벌어들인 수익까지 모두 찾아내 환수해 '범죄가 돈이 된다'는 인식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취지다.
오는 19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조 청장은 민생치안, 범죄예방 두 가지 키워드를 선정해 청장 임기 동안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청장 후보자 시절부터 취임사까지 "△악성사기 △마약 △도박 이 세 가지만큼은 경찰청장으로 있는 동안 박멸하겠다"는 포부를 일관되게 밝혔다.
지난해 경찰청 차장 시절 치안 수요가 급증하는 곳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형사기동대, 기동순찰대를 출범시킨 것만 봐도 그의 범죄예방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31일 핼러윈데이 때는 서울 이태원이 아닌 홍대, 강남 일대에 인파가 더 몰리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이들 조직을 통한 경력 선제 배치로 단 한 건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음은 조 청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곧 취임 100일이 됩니다. 서울경찰청장 시절부터 경찰청장 유력 후보였고 많은 생각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직접 석달 넘게 청장직을 수행해보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경찰청의 지휘부를 구성할 정도가 되면 '경찰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경찰은 어떤 지향점을 보고 일을 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 해야 됩니다. 매일 아침 상황 점검회의를 하는데요, 전국 중요한 상황을 기능별로 보고를 받는데 현장경찰관들의 활동 수범사례도 같이 듣습니다. 보고되는 걸 보면 '우리 경찰이 이래서 세계 최고의 경찰이 됐고 이 결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에 국민이 살게끔 됐구나' 느끼게 됩니다. 물론 보고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현장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직원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휘부가 할 역할은 그 현장 경찰들이 지금처럼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문제되는 상황이 있으면 지휘부가 책임져주고 국민을 바라보면서 지휘부와 현장 경찰이 하나가 돼 일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제가 청장이 돼서 잘 되는 게 아니고 청장이 돼보니 전체적으로 이미 잘하고 있더라고요.
-지난달 핼러윈데이엔 이태원 뿐 아니라 홍대, 성수 일대에도 인파 많이 모였습니다. 무사히 이 기간을 넘겼는데, 다중 밀집지역의 성격이 좀 달라지는 게 있었나요?
▶시민들의 핫플레이스가 조금씩 변하는 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인기 명소는 여전히 있고 성수동이라든지 새로운 지역도 떠오르고 이런 곳에 특정한 날에 인파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곳에 모이는 국민들에게 '이태원 참사의 교훈이 있으니 알아서하세요'라고 절대로 할 수 없고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전후를 비교했을 때 경찰 역할에 대한 중요성, 인식 정도가 많이 달라져서 경력을 선제배치하는 업무 형태가 자리잡았습니다. 과거 조직개편 이전에는 선제 배치를 하고 싶어도 탄력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인력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불행한 사고였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지역일수록 경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 변화도 있던 것 같습니다.
▶경찰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안심이 되거든요. 이태원엔 경찰기동대가 운영을 하고 있지만 이제 시·도경찰청에서 운용할 수 있는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 같은 경력이 수천 명이 생겼습니다. 서울 시내, 전국 모두를 담당하는 게 아니고 몇몇 지역 인기 명소에 경찰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들의 관심도도 높아졌고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경찰력도 많아졌습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요청을 해도 경찰이 해줄 수 있는 자원이 없었는데 이제는 편하게 협조도 하고 경찰이 주도적으로 (치안 업무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습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광화문 일대 집회에선 경찰과 집회 참가자의 부상자가 다수 나오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전 집회들에 비해서 처음 목격했던 양상이 있었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에 평균 한 해에 집회 시위로 인한 부상 경찰관이 약 30명 수준이었습니다. 지난 주말엔 하루만에 105명이 나왔습니다. 이를 우발적인 충돌로 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무대 단상에서 집회를 이끌던 사람이 '폴리스라인을 밀어내라' 같은 이야기도 단계적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전에 경찰이 충분히 대비를 했는데도 아쉬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집회, 의사표현의 자유와 공익을 위한 질서 유지 사이에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상의 권리, 법률상 보호되는 집회의 자유·의사표현의 자유 충분히 존중하고 보장합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대상이 일반 국민이고, 그 국민들이 자신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고 여러가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도외시한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인권과 권리도 보장을 해야 하는 게 여러 단체를 총괄하는 리더의 역할이 아닌 가 싶습니다.
-경제 영역으로 넘어오면, 기업들의 기술유출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술유출 사건은 국가 성장 장잼력을 저해하는 매우 큰 범죄입니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해하기 때문에 매우 엄중히 바라봐야 합니다. 기술유출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아직도 너무 관대한 것 같습니다. 주변 국가에서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서 간첩죄를 이미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시기입니다. 국내기업 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해서는 국익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경찰이 수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 분야에 대해선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와 경찰 등 수사기관이 아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정보력은 경찰 수사를 통해서 빛이 납니다. 올해부터 경찰로 넘어온 대공수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유출을 비롯해 사기 범죄도 이젠 범죄자를 잡는 것보다 범죄수익 환수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몰수법을 보면 경찰이 일정부분에서만 (범죄수익을) 추징 보전할 수 있습니다. 금융, 보이스피싱, 유사수신, 다단계 등 4가지 정도만 할 수 있는데, 경찰은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행위자 처벌에만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범죄수익을 반드시 환수해야 하는데 아직 법으로 정해진 경찰의 역할이 제한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경찰의 기소전 몰수보전추징과 관련한 권한을 좀 더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청소년 도박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취임 일성으로 우리 민생에 있어서 꼭 해결해야 하는 게 3가지라고 언급했습니다. 사기, 마약, 도박입니다. 청소년 도박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좀 먹는 행위입니다.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하나는 도박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추적 단속해 수익 구조를 끊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청소년이니까 교육당국과 협조해 예방교육을 끊임 없이 해줘야 합니다. 학교전담경찰관(SPO)에게 학교에서 범죄예방 교실을 상시 운영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재는 사이버도박과 딥페이크 영상이 주 교육 내용입니다. 딥페이크 범인을 잡고보면 70~80%가 10대입니다. 단속과 교육을 병행해서 아이들이 바른 길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2025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내년 경찰 예산은 어디에 중점을 두셨습니까.
▶경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민생 치안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AI(인공지능) 기반으로 하는 범죄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건 AI가 잡아야 합니다. AI 수사시스템 도입도 투자를 많이 할 생각이고, 마약·사기 등 관련 예산도 과감하게 투자할 생각입니다. AI 전문가, 인재 유치도 중요하고 (AI 활용)기법을 도입하는 예산도 많이 담았습니다.
-지난 국회때 통과되지 못한 민생 치안 법안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해야 되는 법안을 언급해주신다면.
▶현장 경찰관이 가장 힘들어 하는 업무가 정신질환자·주취자 관련입니다. 정신질환자는 응급 입원 대상자거나 보호자 동의하면 입원이 가능한데, 누가봐도 위험성이 존재하면 이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합니다. 딥페이크·마약은 경찰의 위장수사가 꼭 필요합니다. 이런 분야에서 위장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도 있어야합니다. 성인실종자들에 대해선 경찰이 건보공단, 병원 진료 기록을 추적할 수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입법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민생과 관련된 법안들은 정치적인 영역도 아니기 때문에 빨리 제도화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담=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정리=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사진=이기범 기자 leek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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