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한은총재의 대입 묘책(妙策)에 답하다
지난 8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대 입학생을 지역별 인구 비례로 뽑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출셋길로 통하는 서울대 입학 티켓이 부모 경제력과 거주 지역의 교육 여건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자녀의 학업 성취나 대학 진학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련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융기관 수장이 서울대 입학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반향이 크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 비전문가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대입 정책의 복잡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간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한국은행이 나섰겠나.
한은은 현행 제도가 가져온 문제와 관련해서 수도권 과밀과 집값 상승에 주목했다. 그러나 명문대 입학을 향한 과열 경쟁은 그밖에도 여러 문제를 낳는다. 망국적 사교육은 초등학생까지 내려갔다. 학생을 극한 경쟁에 몰아넣고 대다수 학생을 패배자로 만든다. 재수·삼수를 넘어 N수까지 청년시절을 허비하게 한다. 무엇보다 저소득층이나 지역 학생들은 정보 경쟁에서 밀리고 '일타강사'가 없어서 경쟁에서 불리하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기회 사다리' 역할을 못 하고, 개인의 성취동기와 계층이동을 통한 사회의 역동성이 무너진다. 그런 점에서 한은이 계층 간, 지역 간 교육 양극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명문대를 둘러싼 과열 경쟁의 중심에는 '대학 서열화'가 있다. 서울대로 정점으로 하는 일부 대학의 졸업장이 취업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대우와 계층이동에서 과도한 프리미엄을 가지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에 더해 그들끼리 봐주는 소셜네트워킹까지 만연하면 교육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로 이어진다.
가장 쉬운 해결 방안은 '명문대 없애기'다. 그러나 이는 대학의 발전 과정이나 다른 나라 사례에서 볼 때, 현실적이지 못하다. 미국에는 하버드대, 예일대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이 있고, 영국에는 '옥스브리지'로 불리는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이 있다. 일본 동경대, 스위스 취리히 공대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이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베이징대나 칭화대 같은 명문대가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명문대 입학 기회를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한은이 제안한 인구 비례 선발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국민 정서에 반한다. 공부에 들인 노력과 성취를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학생을 한자리에 모아 오답을 찾는 시험을 보게 하고, 총점으로 줄 세워 학생을 뽑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기반 선발 체제도 손볼 때가 됐다.
대안은 부모 배경이나 지역 여건이 영향을 끼치는 시험 성적에만 의존하기보다 학생이 처한 교육 여건, 꿈과 잠재력, 이를 향한 노력과 성취를 종합해서 대학 수학 적격자를 선발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국민 각자의 강점과 역량을 극대화한다는 시대 요구에도 맞다. 이런 선발 방식은 오랫동안 학생을 지도해 온 선생님들이 학생의 노력, 활동 경험, 성취 수준을 꼼꼼히 기록하고, 대학 입학사정관이 학생이 처한 맥락을 고려해서 평가함으로써 구현된다. 다만 이러한 대안이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입학사정관의 전문성과 직업윤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학은 지역별, 고교 유형별 학생 정보를 축적하고, 그렇게 뽑은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추적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이 매년 어떤 학생들을 선발했는지를 공개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국가 지원을 받아 발전해 온 대학이 교육 양극화 해소와 고교교육 정상화에 이바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입학사정관의 직업 안정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학생 선발에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대학에 더 많은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한은이 대입 제도와 교육 양극화 해소라는 사회적 화두를 던졌다. 대입 제도에서 목적의 정당성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책으로 뒷받침된다. 대입에서 교육적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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