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잠시만요, 해남 배추가 곧 갑니다

해남/조홍복 기자 2024. 11. 1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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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6000개’ 수확 현장 가보니
지난 11일 오후 전남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 밭에서 농민들이 가을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올해 유례없는 폭염과 폭우 등 악조건을 극복하고 길러낸 배추다. /김영근 기자

“내가 배추 고순디, 올해처럼 배추 농사가 힘들기는 처음이랑께요.”

지난 11일 오후 전남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 배추밭. 짙은 초록색 배추밭에선 김장용 가을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농민 김광수(56)씨는 “올해 유독 배추 농사가 힘겨웠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난 8월 초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배추 싹 3개 중 1개가 고사했다. 김씨는 “추가로 모종을 심었는데 이번에는 집중호우가 덮쳤다”며 “뿌리가 썩어버린 싹이 10개 중 2개는 됐다”고 했다. “그때는 내 속이 새카맣게 타부렀째.”

배추 모종을 애지중지 90일 이상 키우며 ‘고군분투’한 끝에 가을배추는 무게 4㎏, 커다란 수박만큼 자랐다. 김씨는 그 배추를 뽑아 들고 “올 한 해 폭염과 폭우를 견뎌내고 자란 귀한 배추”라고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속이 덜 차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추가 속출했다. 김씨는 “14년 동안 특급 배추만 거둬들였는데, 올해는 함량 미달인 배추가 30%는 된다”며 “이런 일은 살다살다 처음 본다”고 했다.

해남은 전국 최대 배추 산지다. 농가 3200여 곳이 축구장 6000개와 맞먹는 4257㏊에서 가을·겨울 배추를 키운다. 전국 재배 면적의 26%를 차지한다. 국토 최남단에 있어 가을·겨울 날씨가 온화한 데다 비옥한 황토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일교차도 크다.

그래픽=김현국

그래도 다행인 건 미리 재배 면적을 늘린 것이다. 해남군 관계자는 “밭마다 30% 정도씩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추가 나오는 등 피해가 있었지만 재배량을 늘려 대응했다”며 “그래서 전체 생산량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해남 등 전국 곳곳에서 가을배추 수확을 시작하면서 치솟던 배추 가격도 안정을 찾고 있다. 서울 가락 농수산물 종합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추 상(上)품의 도매가(10㎏ 기준)는 지난 9월 14일 4만1483원까지 올랐다가 14일에는 8426원까지 떨어졌다.

10월 들어 날씨가 선선해지고 일교차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이달 중순 늦더위는 복병이다. 배추는 14~18도 정도로 선선한 날씨에 가장 잘 자란다. 하지만 올해는 11월 중순인 요즘도 낮 기온이 22도까지 올라간다. 20년째 가을배추를 재배하는 해남 농민 박모(60)씨는 “늦가을인데도 전체 재배량의 20%는 속이 덜 찼거나, 고온에 웃자라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11월 말은 돼야 제대로 된 해남 배추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11월 배추 가격이 지난해(7926원)보다 20%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폭염·폭우 등의 영향으로 전국의 배추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2.7% 줄어든 1만2796㏊로 집계됐기 때문.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가을배추 생산량은 118만t으로 작년보다 5.1%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해남군은 11월 말, 12월 초에 배추를 사서 김장을 담그는 게 낫다고 했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일교차가 클수록 특유의 단맛이 강해지고, 속이 단단해져 아삭한 식감이 더 살아난다”며 “지금도 배추가 나쁘지 않지만, 11월 말 이후에는 속이 꽉 찬 최상품 배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농민들은 갓 수확한 통배추를 소금물에 절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천일염을 푼 물에 24시간 절여서 바로 김장하기 좋게 만든다. 이런 농가가 해남에만 700곳에 달한다. 지난해 이들이 올린 매출은 93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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