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김영아 그림책심리상담연구소장 2024. 11. 1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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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진로 상담을 맡은 어느 교수님이 “학생들 대하는 게 너무 버겁다”고 내게 토로한 적이 있다. 40대 중반 조교수로 가르침에 대해 열의가 가득할 시기임에도 그의 얼굴과 말투는 무기력의 상흔으로 가득했다.

취업 상담 주간에 그는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한 학생에게 “교수님과 대화하는 게 꼭 AI랑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상담을 마무리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그날 이후다. 학생들과 상담이 잡힌 날에는 부담감에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고 했다.

평소 그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란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다고 했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는 슬픈 상황에도 자신은 눈물이 잘 나지 않는 편이었다. “공감력 제로”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도 그동안은 잘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보다 어린 연배에게 그런 말을 듣고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숨기고 있는 상처가 느껴졌다. 자신을 찾아가는 ‘감정 회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여러 시도 끝에 올리버 제퍼슨의 그림책 ‘마음이 아플까 봐’가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됐다. 그림책 속 주인공 소녀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었던 할아버지를 잃고서 ‘마음’을 떼내어 유리병에 넣는다. 세상과 마주할 마음을 잘라냈기에 타인과 공감할 수 없었다.

내담자인 교수님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죽음은 집 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더 큰 상처는 남편의 부재(不在)에 무기력해진 어머니를 본 뒤에 찾아왔다. 어머니는 세상과 담을 쌓고, 곁에 있어도 항상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감각해지는 것이 어린 시절 그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림책을 읽으며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어떤 상황을 외면하려 했는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교수는 조금씩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아갔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상처를 직면하지 않고 외면해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꼭꼭 숨겨둔 감정은 언젠가는 고개를 들고 우리를 다시 찾아온다. 또 회피할 것인가? 그럴 때는 기꺼이 그 감정을 마주하자. ‘마음 되찾기’의 첫 과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타인에게 공감하려면, 자기에게 먼저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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