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찰 대공수사, 주말에는 마비되나
“퇴근해서 확인이 안 돼요. 내일 출근해서 알아볼게요.” 국가정보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하던 중국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시점은 일요일인 지난 10일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 간부에게 취재 전화를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주말 밤이라 쉬는 중이니 월요일에 출근해서 사건 기록을 보겠다는 뜻이었다.
이 중국인은 토요일인 9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해 렌터카를 타고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으로 직행해 드론을 날렸다. 자신은 관광객이고, 평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관심이 많아 촬영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한다. 경찰이 주말이라 퇴근하고 쉬어야 하는 탓인지 해당 중국인을 최초 인지한 주체는 국정원이었다.
이후 피의자 신병을 인수한 경찰 수사는 오락가락 그 자체였다. 10일 서초서 주변에선 “특별한 대공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 별것 아닌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11일엔 “군사기지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슬슬 말이 바뀌었다. 12일엔 “대공 사건이라 민감하게 수사 중이다” “대공 혐의점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며 이틀 만에 완전히 다른 말을 했다. 피의자 행적이나 진술에 석연찮은 점이 많은데도 처음부터 “대공 혐의점이 없다”고 밝힌 일부터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의자가 한국의 유일한 주적인 북한의 최우방국에서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국정원 대공 수사권과 검찰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넘긴다고 했다. 당시엔 ‘경찰 권력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공 수사권 이관 11개월째인 지금, 비대 권력이 얼마나 나태해졌는지 그 단면이 국정원 드론 사건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간첩 색출에 특화된 국정원과 달리 경찰은 편의점 절도 잡범부터 토막 살인범, 보이스피싱범 등등 온갖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거대 조직이다. 대공 업무에 쏟을 여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일선 경찰에서 들려온 지는 이미 한참 됐다.
부산경찰청은 중국인 유학생 3명이 최소 2년간 우리 군사시설 사진을 수백 차례 촬영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들의 휴대전화엔 중국 공안의 전화번호도 저장돼 있었지만, 경찰의 최상위 기관인 경찰청은 보고를 받았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다른 사건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이런 사건의 보고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일반 국민의 상식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무능,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8월 취임사에서 대공 수사권 이관과 관련해 “장기간 대공 수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제반 시스템과 제도 확충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공 사건을 맡았음에도 본인의 주말 저녁이 우선인 서초경찰서 간부의 모습을 보면 ‘시스템과 제도’만이 대공 수사의 걸림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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