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여전히 가을은 아름답다
“이 생활 지긋지긋해서 나가겠습니다!”
지난 4월 한 형제가 산골에서 겨울을 나고는, 봄이 오자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그랬다. 왜 공동체를 떠나겠다는 것일까. 봄 기운에 그러나? 농번기가 오니 많은 일 때문일까? 무료함 때문인가? 거리에서 지내던 이가 술도 담배도 못 하고 기도하며 규칙 생활을 하니 얼마나 힘들었으랴. 그는 입소 전 기관지, 폐가 망가진 상태라 “거리에서 죽지 않으려면 겨울을 공동체에 와서 머물라”고 내가 강권했다. 몸은 회복되어 나가니 다행이다.
떠난 후에 그는 주일엔 서울에 있는 교회로 왔다. 그와 한 주 한 주 악수할 때마다 급히 쇠약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 악수를 못 하고, 마비된 손을 보이는 것이다. 중풍이 왔다 한다. 내가 공동체로 다시 들어오라 하니 “목사님, 생각 없습니다. 고향 가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요.” 뜻밖이었다. 그래도 공동체에 머물다 가라 했다. 출국을 돕겠다 했다. 조선족인 그는 불법 체류자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병든 아내 병원비 때문이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한 채 가진 돈이 떨어졌다. 청력조차 좋지 않았다. 막노동도 귀가 들려야 살아남지 않겠나.
우린 그에게 지난 겨울 보청기를 선물했다. 귀가 들리니 눈이 휘둥그래지며 감사하다고 했다. 가난과 좌절과 불편함으로 밀봉됐던 마음의 벽이 녹아내린 듯했다. 최근엔 거리에서 불법 체류 단속반에 쫓기고 있었다 한다. 다행히 구제 기간인지라 신속하게 여권을 회복했다. 항공권도 마련했다. 그는 다음 월요일에 떠난다. 귀향 심경을 물으니 “얼른 딸이 보고 싶어요”라고 한다. 어느 새 그의 아내는 이생을 떠난 듯하다. 오늘은 공동체 형제들이 송별을 위해 장보러 나갔다. 산간 가을 기운 속에서 모두 기쁨과 아쉬움이 깊어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제초제, 무농약 농사 하시지요? 지금 콩 타작하시겠네요?” 주문 요청이다. “하하, 잡초 타작해야겠습니다. 콩밭이 강아지풀 개망초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올 봄 기후변화 속에서 고생 고생해서 밭을 갈았다. 퇴비를 깔고, 콩을 심었다. 트랙터가 고장 나 속을 타게 해서, 큰 비용을 들여 고쳤다. 다행히 파종 후엔 비가 알맞게 와서 서리태 싹이 한 뼘 예쁘게 자랐다.
비 그친 아침 동물 퇴치 목책을 세우러 밭엘 갔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산짐승들이 다녀갔다. 고라니, 멧돼지, 노루…. 기막힌 타이밍이다. 밭을 깨끗이 드시고 갔다. 어찌 이럴 수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상을 했다. “7년째엔 안식년으로 땅도 쉬게 하라 하였거늘, 가난한 이와 날짐승, 들짐승의 몫도 남겨두라 하였거늘.” “그래, 그들과 같이 나누어 먹자.” 곧 마음을 비우니, 가을이 기대되었다. 이제야 가을이 오니 콩 타작으로 바쁠 때가 한가롭기만 하다. 덕분에 공동체의 급경사 급커브 진입로 확장 공사를 하게 되었다. 1년을 쉬니, 100년의 초석을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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