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84] 일론 머스크의 ‘Vox Populi’
‘덴세이진고(天声人語)’는 아사히신문 1면 칼럼 제목이다. 종종 대학 입시에 지문으로 출제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아사히신문의 간판으로 유명하다. 첫 칼럼이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120년에 달하는 역사도 인상적이다. 신문사는 제목의 뜻을 ‘사람들의 말이 곧 하늘의 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심은 천심’과 유사한 뜻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영문판에 게재될 때의 제목은 ‘Vox Populi, Vox Dei’다. ‘민중의 목소리는 곧 신의 목소리’라는 뜻의 이 라틴어 구절은 18세기 초반 영국의 휘그당이 발간한 소책자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에서 태동한 보편적 기본권, 의회민주주의 등 근대 자유주의 이념을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한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다.
‘Vox Populi, Vox Dei’는 세기의 괴짜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애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는 트위터 인수 후 논란이 된 자신의 트위터 CEO직 사임 여부나 영구 폐쇄 조치가 내려졌던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복권(復權) 문제를 온라인 여론 투표로 결정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한 바 있다. 사람들이 원해서 그에 따르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냉소의 뉘앙스가 담긴 측면도 있다.
머스크는 지난 미 대선 트럼프 압승의 1등 공신이다. 그는 막대한 선거 자금 후원은 물론, 첨단 데이터 분석 기법을 구사하는 지원팀을 운영하고 경합 지역 유세장을 직접 누비며 트럼프의 당선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 중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사실상 매표(買票)의 경계선에 서있는 파격적인 방법도 있다. 정치의 장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따른다’는 명제를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도록 한다’는 명제로 치환하는 순간 ‘vox populi’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이번 미 대선에서 머스크는 ‘vox populi’를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는 심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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