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21] 혈투 예고하는 미·중
고대 중국의 예법에서는 주인과 손님의 행동 절차를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문을 들어선 손님은 집의 서쪽에서, 그를 맞이하는 주인은 동쪽에서 각각 움직인다. 주객(主客)이 동서(東西)로 나뉘어 서서 예법을 따르는 동작이다.
이는 분정항례(分庭抗禮)라는 성어로 정착했다. 예법이 이뤄지는 집 뜰[庭]에 양편으로 갈라져[分] 서로 대등한[抗] 예법[禮]을 진행한다는 뜻이다. 차별 없이, 대등하게 이뤄지는 예절의 집행 장면이지만 지금은 ‘서로 대립하다’는 의미로 쓴다.
전쟁터에서 싸움을 독려하는 도구로는 깃발과 북이 있다. 그를 써서 기고상당(旗鼓相當)이라고 하면 ‘싸우는 기세가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서로 한판 붙어서 승패를 가르려는 다툼의 엇비슷한 기운을 표현하는 성어다.
필적(匹敵)이라는 말도 있다. 서로 맞서서 동등한 수준의 싸움을 벌일 수 있는 두 편을 일컫는 단어다. 누가 위인지, 어느 쪽이 아래인지 가리기 매우 어려운 싸움을 일컫는 단어는 백중(伯仲)이다. ‘백’은 맏이, ‘중’은 그 아래의 지칭이다.
대등하게 맞서는 양쪽 형세가 저울의 수평을 이룬다고 해서 나온 말은 항형(抗衡)이다. 정분(鼎分)은 ‘삼국연의(三國演義)’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위·촉·오(魏·蜀·吳) 세 나라가 천하를 삼분해서 대립하는 형국이다.
가을걷이 뒤의 풍요를 나눠 갖는다는 뜻의 평분추색(平分秋色)도 세력 균형을 지칭한다. 그러나 올해 가을은 중국이 그리던 모습과 영 딴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뒤 미국은 강력한 대중(對中) 공세와 제재를 예고한다.
더 이상 중국과 한가하게 예법을 논할 생각 없는 미국은 중국이라는 손님을 아예 문밖으로 내쫓은 뒤 싸울 태세다. 거센 육박전의 종합 격투기(MMA)와 모양새 중심의 쿵푸가 맞붙는 구도다. 바야흐로 미·중의 다툼이 혈투(血鬪)로 번질지 모를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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