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이라는 논리로 나치 독재를 옹호하다[책과 삶]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지음 박경선 옮김|진실의힘|408쪽|2만3000원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이듬해 처형됐다. 아이히만은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의 관리 책임자였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법률을 준수하는 것은 공직자가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라며 “저는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 윤리·정치철학 교수인 헤린더 파우어-스투더는 <히틀러의 법률가들>에서 나치 독일의 법률이 어떻게 독재를 옹호했는지 설명한다. 1932년 바이마르공화국 총선에서 권력을 잡은 나치는 다음해 ‘수권법’을 마련해 총통 아돌프 히틀러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했다. 나치 독일의 법률가들은 나치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합법적 혁명’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법학자 하인리히 트리펠은 “1933년 혁명의 주요 부분들은 전적으로 유효한 헌법의 범위 안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나치 독일의 ‘수권법’과 ‘민족과 국가 수호를 위한 제국 대통령령’ 등은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48조에 기초한 것이다.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통해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거주·표현·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무력화할 권한이 있었다. 나치 법률가들은 나치 독일이 바이마르공화국의 ‘긴급명령 통치’ 외형을 계승했다는 ‘합법성’의 외관을 만들었다.
나치 친위대 소속 법률가였던 라인하르트 횐은 “정의는 법의 바깥에 있지 않다”며 “공동체는 단순히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 법적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나치 독일은 법과 도덕의 영역을 통합했다. 법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도덕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했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저자는 서론에서 “법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다 보면 국가권력이 일반적인 도덕과 법 기준을 모두 위반해도 이를 막는 데 실패할 수 있다”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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