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미국 신고립주의의 경제적 기원
자국의 가치를 외부 세계에 투사하고자 하는 미국의 욕망은 현저히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1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전쟁에 이어 다시 등장한 트럼프가 어떤 채찍을 들지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비 지원 중단을 공언하고 있기도 하다. 국가 간 관계에서 ‘장기적 이익’과 무관한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지만, 관계를 ‘거래’로 환원하는 트럼프식 ‘가치’가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 공감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적어도 가치의 공유라는 점에서는 미국은 고립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고립주의적 전통은 뿌리가 깊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미국은 유럽의 어떤 국가와도 동맹을 맺으면 안 되고, 유럽의 분쟁에 휘말리면 안 된다”고 말했고,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상호불간섭’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먼로주의를 주창했다.
건국 초기 미국의 고립주의는 영국과 전쟁을 치르며 독립을 이룬 데 따른 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한 결과였지만, 한편으론 아메리카 대륙의 풍요로움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자국 내 생산을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인구 등 미국이 가진 장점이 많았다. 다른 국가와 교류하지 않아도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초기 고립주의의 경제적 기원이었다.
세계대전 참전과 경제적 이익
고립주의적 전통은 20세기 전반기까지 이어졌다. 미국은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승리를 이끌어냈지만, 처음부터 전쟁에 개입할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다. 미국이 공격받은 후에야 마지못해 전장에 발을 들여놨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됐는데, 미국은 대서양을 오가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자국 국민이 희생된 직후인 1917년 4월에야 유럽에 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발발했지만,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공습을 받은 1941년 12월에야 참전을 결심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유라시아 대륙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은 자연스레 패권국이 됐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던 소련과의 대립은 미국을 명실상부한 서방 진영의 맹주로 만들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미국 해군이 3대양을 장악하면서 동맹국들에 안전한 물류망을 제공했고, 핵 우산 제공 등 군사적 배려도 함께했다. 한반도에도 1991년까지 미국의 전술핵이 들어와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시장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을 허용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대미 수출로 경제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거래의 매개가 된 달러화는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미국도 경제적으로 수혜를 입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민간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동맹국에 대한 자국시장 접근 허용은, 미국인들에 의한 수입품 소비에 다름 아니었는데 미국의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 59%에서 2022년 67%까지 높아졌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됐지만,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이상 소비와 대외채무 상환에 필요한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왕성한 소비의 당연한 귀결은 저축의 축소인데, 이 역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대미 교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는 국가들이 교역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 매수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국채 매수는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로, 미국은 부족한 저축을 해외차입으로 해결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념 경쟁에서의 주적이 사라졌지만, 미국은 세계의 보안관이라는 기존 역할을 관성적으로 지속했다. 부작용은 2000년대 들어 나타났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야 9·11테러의 주범이었던 알카에다에 대한 응징으로 포장할 수 있었지만, 이라크 공격은 명분이 없었다.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주권국가를 침공했건만 끝내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념이라는 공통 분모가 사라진 서구 동맹국들에 미국의 오만은 반감을 샀고, 무엇보다도 미국인 스스로가 중동에서 장기간 전개된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 변화 부른 4가지 결정적 사건
경제적으로도 네 가지 결정적인 사건이 변화를 불러왔다. 먼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금융위기의 여파로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기 후퇴를 경험하게 된다. 제조업 기반 없이 금융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성장 전략에 대한 성찰이 대두됐고, 하버드대학의 게리 피사로 교수 등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진흥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980년 이후 줄곧 감소했던 미국의 제조업 고용자 수는 2009년을 저점으로 늘어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셰일 에너지의 발견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 됐고, 넘쳐나는 셰일 가스를 활용해 미국의 산업용 전기 가격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제조업에 유리한 기반이 마련됐고, 미국 정부는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의 미국 환류를 촉구하는 리쇼어링 정책을 폈다. 리쇼어링 정책의 원조는 보조금 지급을 약속한 바이든 정부나, 관세를 통해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트럼프 신정부가 아니라 오바마 정부로 봐야 한다.
세 번째 사건은 양적완화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가 시행됐다. 해외 저축자에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저축 부족이라는 문제의 해결사로 나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들 수 있다. 대역병의 확산 과정에서 멈춰진 글로벌 밸류 체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분업 구조의 부작용을 보여줬다. 미국은 보조금 지급 또는 관세 부과를 통해 핵심 제조업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에서 느껴지는 고립주의의 경제적 기반은 2008년 이후 전개된 일련의 변화들에서 만들어졌다. 미국이 나라 밖 세계에 대한 관심을 줄이면서 나타날 수 있는 힘의 공백은 상시적인 지정학적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이미 경제와 자산시장에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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