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애기향유의 꽃과 고라니의 뼈
멀리 힘겹게 온 햇빛이 잘게 부서지는 것 같아 손바닥을 한번 비벼보는 시간.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감기 걱정도 하면서 주먹을 가볍게 쥐면 쥐꼬리 같은 햇살을 사로잡는 느낌도 있다.
인천공항 근처 오종종한 섬으로 꽃산행을 나선다. 여러 난개발 공사로 움푹줌푹한 해변가에 무량한 바다와 대치하는 낮은 산들이 특이한 지형을 이루며 귀한 꽃들을 보듬고 있다. 오늘 목표로 한 꽃은 애기향유. 계절이 겨울의 입구로 가도록 늦게까지 꽃의 자리를 유지하는 기특한 야생화다. 이런 꽃은 허공에 그냥 피어 있기보다는 지하의 누군가가 바깥으로 요량껏 툭 던져놓은 것이란 실감도 진하게 든다.
썰물이나 밀물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르니, 평야처럼 드넓은 평지에 키 작은 야생화가 즐비하다. 소금기를 듬뿍 머금은 채 단풍보다 더 붉은 해홍나물, 함초도 빽빽하고 그 사이로 바닥까지 내려앉은 허공을 맘껏 희롱하며 달랑게들이 재재발거리며 놀고 있다.
어라, 어느 곳에 하얗게 백화된 짐승의 뼈가 생시의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누워 있다. 풍만했던 살은 어디론가 간곳없고 뼈만 산맥처럼 모래밭에 의리를 지키며 남은 것이다. 함께 간 자연사박물관 학예사의 매서운 눈이 놓칠 리가 없다. 마른 갈대를 꺾어 풍화된 뼈의 구멍에 끼우며 수습하는 동안, 어쩌다 부딪히는 뼈들은 타악기만큼이나 청량한 소리를 낸다.
인천에서 돌아와 일상에 복귀하고, 점심시간. 이런 쌀랑한 날에는 뜨끈한 국물의 감자탕이 제격이다. 푹 고은 뼈다귀들, 힘줄과 살코기가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정신없이 파먹고 나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학예사로부터 문자가 와 있다. “용유도 그 뼈, 고라니입니다!” 나는 입안의 미끄러운 기름도 닦을 겸 혀를 굴리며 아, 고라니! 라고 한번 발음했다.
오후엔 치과에 정기검진을 갔다. 갯벌 같은 우툴두툴한 입천장을 한번 혀로 쓰다듬고 주문대로 입 벌리고 누웠다. 탐침 같은 기구가 들어오더니 여기저기 잇몸을 찌르고 치열을 딱딱딱 두드린다. 오늘따라 제법 청량하게 들리는 소리. 앞으로 이 작은 공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고라니 몇 마리 입에서 툭, 튀어나가는 듯했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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