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트럼프의 팟캐스트와 한국 대통령의 소통

2024. 11. 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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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0월 25일 텍사스로 날아갔다. 대선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아 분초를 아껴 쓰던 당시, 그가 다른 일정들을 제쳐놓고 찾아간 곳은 한 팟캐스트 스튜디오. 노랑과 빨강 네온 사인으로 빛나는 'The Joe Rogan Experience'라는 팟캐스트 로고를 배경으로 트럼프는 진행자인 조 로건과 커다란 목재 책상에 마주 앉았다. 책상 위에는 마이크 2개는 물론이고 여러 개의 컵과 사슴뿔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일반 가정집의 식탁이나 자녀 책상 같은 모습이었다.

조 로건은 코미디언 겸 UFC(종합격투기) 해설자로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장장 2시간 59분짜리의 이 인터뷰는 당시 미국 국민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는 자신이 진행했던 NBC의 리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에 대한 일화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로건이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라고 묻자 "초현실적(surreal)이었다. 총에 맞았을 때도 그렇게까지 초현실적이지는 않았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제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을 때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달리면서 생각했어요, '이제 내가 대통령이구나'… 백악관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해가 지기 직전이었지요. 대통령 전용 구역에 올라갔는데, 이곳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저는 '링컨 침실을 보고 싶다'고 했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링컨은 아주 키가 컸죠, 제 아들 배런 정도였을 거예요. 그래서 침대도 길쭉했어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정말 '이게 현실인가' 싶었어요."

일반 국민들이 친근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대화 내용이 아닌가. '편집 없이' 녹화된 이 인터뷰는 이종격투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대선 후보, 관세, 이민자 문제 등을 주제로 이어졌다. 자기는 팟캐스트를 잘 몰랐지만 18세 막내아들 배런이 출연하라고 설득해 나왔다고 했다. 2006년생인 배런 이야기를 또 꺼내 '가족'을 강조한 것. 일반적인 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터뷰 내용과 분위기였다.

실제로 이 인터뷰는 14일 현재 유튜브에서 495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스포티파이에는 댓글이 1만7500개 이상 달렸다. 가장 최근에 독자가 쓴 댓글을 한번 보자. "놀랍다(amazing). 트럼프는 날카롭고 똑똑하다. 좋고 상식적인 사람이고 멋진 보통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팟캐스트 인터뷰를 통한 평범한 일반 국민과의 소통이 '성공'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선거 직전인 10월에만 팟캐스트에 8번이나 나가 국민과 소통했다. 팟캐스트는 정치인에게 장점이 많은 소통 수단이다. 무엇보다 2~3시간씩 길게 인터뷰가 진행되기 때문에 청취자에게 정치인을 정말 잘 알게 된 듯한 느낌, 이웃 사람이 된 듯한 감정, 즉 '친밀감'을 줄 수 있다.

사실 조 로건은 트럼프를 무조건 지지하는 '편안한 팟캐스트 진행자'는 아니었다. 미국 기준으로 진보나 중도좌파 정도로 분류된다. 5년 전에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밝혔고, 2년 전인 2022년 6월에는 도널드 트럼프를 도와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팟캐스트에 초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텍사스까지 날아가 미국민들과 3시간이나 대화를 시도했다.

이 모습을 보며 한국 대통령들이 떠올랐다. 전전임과 전임 대통령은 모두 '불통'이었다. 재임 기간 동안 공식 기자회견을 박근혜 전 대통령은 3회, 문재인 전 대통령은 10회쯤 진행했다. 주요 현안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것을 꺼렸다. 이를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야심찬 출발'을 했다. 구중심처(九重深處) 청와대에 들어가 국민과 멀어진 전임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집무실과 관저를 아예 이전했다. 그리고 '출퇴근'하는 길에 미국, 영국, 일본처럼 기자들 앞에 잠시 서서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이야기했다.

'도어스테핑'이었다. 그러나 한 언론사 기자와의 충돌로 중단됐고, 소통 횟수도 급감했다. 그 신선했던 시도, 다시 해보자. 형식은 조금 바꿔도 된다.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동문서답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는 게 좋다. 국민을 위해서도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다. 출근길에 듣기 좋은 말이 아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을 자발적으로 만나며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다.

'친밀감'을 얻을 수도 있다. 78세 트럼프도 18세 막내 아들의 조언을 수용해 팟캐스트 스튜디오들을 찾아갔다. 피하는 것보다 열린 마음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서 승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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