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잡음에서 신호를 찾아내는 날씨예측 혁명사

2024. 11. 14. 17: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동언 기상청장

현대 기상예보의 정확도 향상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나란히 이루어져 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에 '잡음'으로 여겨졌던 관측자료가 오늘날 날씨예측 프로그램인 수치예보모델에서 중요한 '신호'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기상레이더와 전지구위성항법시스템(GNSS, 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으로, 이들의 발전 과정을 통해 기상예보의 혁명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적군의 전투기를 탐지하기 위해 레이더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는데, 레이더 화면에 비행기 외에 수많은 '잡음'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잡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비와 구름으로, 당시에는 이러한 기상 현상은 레이더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기상학자들은 기상레이더의 잡음이 기상 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귀중한 정보라는 것을 파악하고, 이 잡음에 주목하여 연구에 박차를 가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상레이더 관측망을 통해 광범위한 지역의 강수 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수치예보모델의 초기자료와 예측결과 검증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수치예보모델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 도플러 기상레이더가 개발됨에 따라 기상레이더 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강수와 레이더의 거리에 따른 차이를 관측할 수 있는 도플러 효과를 이용하여 강수입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호우의 구조와 발달 과정을 더욱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기상레이더는 초단기예보에 필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도입된 이중편파 레이더는 비, 눈, 우박 등 강수의 종류까지 구분하여, 기상현상을 정확하게 탐지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과거의 '잡음'이 현재는 기상예보의 핵심 '신호'로 변모한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전지구위성항법시스템(GNSS)이다. 3개 이상의 위성 신호를 통해 정밀한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미국의 GNSS인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처음 군사용으로 개발되었는데, 이후 민간에 개방되면서 민간에서도 고정밀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GNSS는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도 운영되며 기상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기상학자들은 GNSS 위성 신호가 대기를 통과할 때 수증기 때문에 평소보다 늦게 도착하는 지연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전까지 이 지연은 위치 정확도를 저해하는 '잡음'으로 여겨졌지만, 기상학자들은 이를 대기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로 재해석했다. 2000년대 들어 GNSS를 통해 대기 수증기를 관측하는 기술이 수치예보모델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고, 특히 집중호우나 강한 저기압과 같은 극한 기상 현상의 예측에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에 설치된 수천 개의 GNSS 수신기가 실시간으로 대기 상태를 관측 중이며, 관측된 자료들은 수치예보모델에 실시간으로 입력되어 기상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기상레이더와 GNSS의 사례는 '잡음'이 기상에서 어떻게 중요한 '신호'로 변모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기상학자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는 능력, 그리고 정책적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와 유사한 예로,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생활 속에서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자료들 속에서 의미 있는 신호들을 찾아낼 수 있게 해주고 있으며, 오늘의 '잡음'이 내일의 중요한 '신호'가 되는 시기를 획기적으로 앞당겨 수치예보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잡음으로 간주되던 것을 신호로 전환하여 기상예보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듯, 일상으로 다가온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상청은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나아가고 있는 기상청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장동언 기상청장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