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올해 30년 됐네요...이젠 늙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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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이 나온 지 올해 꼭 30년이 되네요. 제겐 축복이자 저주 같은 일이었죠."
책 서문에 쓴 "늙은 시인이 되어 배반과 쓰라림을 경험한 뒤에 다시 시를 읽습니다"라는 글귀와 어쩐지 맥이 통하는 답변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지나간 씁쓸한 거리에서 시인은 썼고 독자들은 뜨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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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과 쓰라림 경험한 후 다시 詩로”
시선집 ‘나에게 영혼을···’ 펴낸 최영미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50만부 판매는 축복이자 저주
그 이후 성취감 느끼기 어려워
문단에 미투 촉발한 시 ‘괴물’
다시 돌아간다면 안 쓰고싶어
시인 최영미(63)가 돌아왔다. 이젠 ‘늙은 시인’이 됐다는 담담한 고백과 함께.
그가 선정한 명시와 해설이 담긴 시선집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를 들고 온 그는 최근 서울 마포 해냄출판사 사옥에서 기자와 만나 “사람들은 제 나이가 영원히 서른살인 줄 안다. 여전히 시를 통해 충격과 놀람을 느끼고 싶어하지만 저는 마음이 지쳤다”고 말했다.
책 서문에 쓴 “늙은 시인이 되어 배반과 쓰라림을 경험한 뒤에 다시 시를 읽습니다”라는 글귀와 어쩐지 맥이 통하는 답변이다.
서른세 살에 출간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서점에 깔리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1994년 첫해 50만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쌓아 올렸다.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지나간 씁쓸한 거리에서 시인은 썼고 독자들은 뜨겁게 읽었다. 시대의 갈림길에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실업자였던 제게 직업과 명함을 준 시였다”면서도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출발이었다. 올라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첫 시집이 너무 각인돼 성취감을 느끼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가 있어 심심하지 않은 인생이었다.
“시만 써서 먹고사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저도 3년 안에 다 썼어요. 재테크, 돈 개념이 없었죠. 시를 또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도 않죠. 다만 시는 저를 더 재미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늙는다는 것에 대해 그는 “더 이상 싸우려 하지 않고, 호기심이 현격하게 줄어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부당한 세상에 맞섰던 투사였다. 2017년 ‘황해문화’에 원로시인 고은을 연상시키는 인물 En 선생의 성추행을 비판한 시 ‘괴물’을 발표해 문단 미투 운동에 불을 질렀다. 소송에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청탁이 와서 썼지만, 마음은 반반이었어요. 아마 지금 써달라고 한다면 거절했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제게 큰 손해였거든요.”
청탁도 끊기고 작품보다 작가가 부각됐다. 소송하느라 잇몸 치료 시기도 놓쳤다. 그는 행복에 대해 “지금 이가 아프지 않은 것. 아파도 통증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묻자 “언젠가 그녀가 탈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탈 줄 몰랐다”며 “한 개인의 성취이자 한국 문학의 성취”라고 말했다.
이번에 나온 시선집 제목은 미국 시인 사라 티즈데일 시 ‘선물’에 나온 시구다.
첫사랑은 노래를 주고, 두 번째 사랑은 내 눈을 뜨게 했고, 세 번째 사랑은 영혼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나에게도 영혼을 알게 해준 사람이 있지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알아간다는 것인데, 첫사랑부터 운이 좋아 영혼이 통하면 좋겠지만 보통 사랑을 하면서 배우죠.”
그는 “풍자보다 사랑이 좋지/세상을 바꾸는 건 풍자가 아니라 사랑”이라 단언하는 ‘사랑의 시인’이기도 하다. “연애 시를 잘 쓰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고대부터 현대까지 연애 시가 너무 많죠. 한 시인이 괜찮은 연애 시 한 편 쓰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전 만족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겠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여성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스포츠인이나 건축가, 아니면 평범한 회사원도 좋지요. 월급 받는 사람이 굉장히 부러워요. 퇴직금도 있고. 나이 들어서 글 쓰는 분들이 신기하답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며 “소리 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시를 낭송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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