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폐암 신약 속속 출시…환자들에 '희망'
유전자검사로 효과 미리 알아
맞춤 표적항암제 쓸수 있지만
비급여로 年수천만원씩 부담
환자·의료계 "건보 적용을"
지난여름 폐암 진단을 받은 70대 윤 모씨는 유전자 검사로 가장 효과적인 표적 항암제가 무엇인지까지 파악했지만, 치료를 망설이고 있다. 그는 "그 약을 맞으면 확실히 종양이 작아질 수 있다고 하는데, 건강보험이 안돼 너무 비싸다"면서 "결혼도 안한 딸한테 그 비싼 치료제를 쓰겠다고 말할 수가 없어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고 말했다.
폐암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사망률 1위 암이다. 국립암센터 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7~2021년 진단을 받은 폐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38.5%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72.1%)의 절반 수준이다. 초기에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조기진단이 어렵고, 폐 주변 혈관이나 림프절을 통해 주위 조직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도 쉽기 때문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폐암 사망률을 낮추는 방안 중 하나로 '희귀변이' 표적 치료제를 급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년 11월 17일은 미국흉부외과의사협회(CHEST)가 제정한 '세계 폐암의 날'이다.
폐암은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 등으로 나뉜다. 전체 폐암의 80~9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은 진단 시점에 이미 전이가 이뤄졌거나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전이 단계에서 진단된 경우 5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는 9%뿐이다. 게다가 다른 암과 달리 환자 5명 중 4명가량이 '유전자 변이'를 동반한다.
안진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비소세포폐암이 전이될 경우 어떤 항암제를 선택하느냐가 치료 효과 및 예후에 중요하다"며 "유전자 검사로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면 표적 항암제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데, 희귀 폐암의 경우 비급여여서 연간 수천만 원의 치료비를 환자들이 부담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비소세포폐암의 주요 돌연변이로는 EGFR, KRAS, ALK, MET, ROS1, HER2, BRAF, RET, NTRK 등이 있고 유전자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통상 유전자 변이 가운데 EGFR이 30~40%로 가장 흔하며, KRAS가 10~20%, ALK는 4~5%를 차지한다. 이외에 각각 1~4% 수준에 그치는 희귀변이로 BRAF, ROS1, MET, RET, HER2가 있다. 극소수에서만 나타나는 희귀 유전자 동반 비소세포폐암은 최근 들어서야 효과적인 표적 치료 옵션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내 최초 HER2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가 대표적이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 개발한 엔허투는 약물이 암세포에만 작용하도록 하는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ADC) 의약품이다. 안 교수는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엔허투가 이미 HER2 변이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치료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엔허투에 앞서 2021년 한국화이자제약의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로비큐아(성분명 롤라티닙)', 이듬해 한국릴리의 RET 융합·양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테브모(셀퍼카티닙)' 등 희소 폐암 표적 치료제들이 국내 허가를 받았다.
같은 해 암젠코리아도 세계 최초 KRAS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루마크라스(소토라십)'를 국내에 내놨다. 루마크라스는 다른 표적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았던 KRAS G12C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대한 2년 장기 데이터 결과 효과를 입증하기도 했다.
다만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과제다.
엔허투만 하더라도 현재 1바이알(병)당 140만원대로 연간 투약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 안 교수는 "상대적으로 환자가 많지 않은 희귀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대부분이 대조군 없는 2상 임상시험만으로 허가를 받아 급여가 매우 더디다"며 "치료 환경과 약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급여 환경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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