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스위프’ 감세 속도전...美 경제 부흥이냐, 빚더미냐

홍준기 기자 2024. 11.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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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美 60% 관세 때리면, 中은 보복 패키지...무력 충돌 불씨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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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화요일(미국 대선)의 승리로 세계는 트럼프의 발아래 놓이게 됐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에 대해 이처럼 표현했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깃발을 든 스트롱맨의 복귀로 글로벌 경제는 ‘시계(視界) 제로’ 안갯속 상태란 분석이다.

더구나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공화당이 의회 상원과 하원까지 다수 의석을 점하는 ‘레드 스위프(Red Sweep)’에 성공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트럼프노믹스(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는 1기 때보다 더 거침없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의 뜻대로 법 개정이나 예산 편성이 가능하고, 그의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만 내각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WEEKLY BIZ는 해외 전문가 13명에게 긴급 자문해 트럼프노믹스 2.0 시대가 글로벌 경제에 미칠 충격파를 분석했다.

그래픽=양진경

◇감세 정책의 끝, 경제 부흥이냐 빚더미냐

트럼프 경제 철학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감세(減稅)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에서 ‘감세와 일자리법(TCJA·일명 트럼프 감세법)’을 통해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확 낮췄는데, 이번 대선을 앞두고 “15%까지 더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약속을 지킨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43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법인세율 평균(21.1%)보다 6%포인트가량 낮아지는 셈이다. 레드 스위프에 성공한 공화당은 ‘입법 속도전’을 예고하고 있어 생각보다 빨리 세율이 내려갈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은 트럼프 취임 100일 이내에 주요 입법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법인세를 내리는 건 미국 기업들엔 반가운 소식이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슈로더의 사이먼 웨버 글로벌 주식 총괄은 “법인세 인하 계획은 미국 기업에는 순풍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감세와 함께 첨단 기술 발전 촉진을 위한 규제 완화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시가총액이 큰 기술주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 등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했다.

다만 감세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세금이 덜 걷히니 미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 미국 CRFB(책임 있는 연방 예산위원회)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공약에 따라 앞으로 10년(2026~2035년)간 미국 정부 재정 적자가 최대 15조5500억달러 늘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기준 97.3% 수준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정부가 직접 보유한 국채는 제외)이 2035년엔 161%까지 높아진다. 불어나는 나랏빚은 미국의 경제적인 힘을 상징하는 달러 가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트럼프의 적자를 불사하는 감세 정책이 미국 경기를 뜨겁게 달구며 달러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론 미국 정부의 부채 상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 달러 가치가 약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트럼플레이션 우려도

해외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관세맨(Tariff Man)’이라고까지 불리는 트럼프가 휘두를 보호무역 정책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모든 국가를 상대로 보편관세 10~20%를 적용하고, 중국 제품에는 60%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내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이며, 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했다. 관세 장벽을 쌓아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보호하고, 관세 수입을 늘려 자국 내 감세 정책으로 인한 ‘세수 공백’을 벌충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하지만 싱크탱크인 세금정책센터는 10년간 관세 세율 인상으로 늘어나는 세수는 2조8000억달러 남짓으로,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분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분석을 내놨다.

경제 전문가들은 고관세 정책이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의 정책이 초래하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걸 우려한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로 지난 9월(2.4%)에 비해 다시 높아졌는데, 보호무역정책이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이어지면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통화정책 전문가인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도 미국 제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면 물가 상승과 경제 성장률 하락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反)이민 정책 역시 인플레이션의 불길을 재점화시킬 수 있다. 아이컨그린 교수와 굿하트 교수는 “반이민 정책은 구인난에 따른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에도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물가가 또 고개를 들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연준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재발하면 연준은 기준금리를 다시 올려야 하는데, 경기 부양을 중시하는 트럼프가 ‘금리를 올려선 안 된다’며 압박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 부의장 출신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려 하는 건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들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결정을 너무나 많이 쏟아내기 때문”이라며 “연준을 보호할 헌법적 장치가 없는 상태라 상·하원을 장악한 트럼프가 연준의 권한을 뒤흔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했다.

무역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처럼 경제에서 무역 의존도가 큰 나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욘 파렐리우센 OECD 한국경제담당관은 “제조업 수출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라며 “무역 장벽과 밸류체인(가치 사슬)의 분절이 현실화되면, 이로 인한 손해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미국 기업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도 14억 인구의 중국 시장을 잃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란 얘기다. 중국 전문가인 일라리아 마초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미국 대통령의 지지 기반과 주식 시장에 타격을 주기 위해 고안한 포괄적인 보복 패키지를 선보일 수 있다”며 “미국 거대 테크 기업이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도 있다. 마크 렘리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는 “미국 대학이나 기업으로 몰려드는 해외 인재가 미국 테크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는데 관세 부과로 다른 국가를 모두 적으로 돌리면 (미국으로 유입되는) 인재 파이프라인도 끊어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역 전쟁은 경제적 여파뿐 아니라 무력 충돌이란 ‘재앙’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경고까지 나온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1930년대 미국의 스무트-홀리법처럼 글로벌 교역을 교란시키며 미래 국제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스무트-홀리법은 글로벌 무역을 쪼그라들게 하고, 대공황 이후 경제 회복을 둔화시킨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로 인해 나치 같은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힘을 얻으며 2차 세계 대전이 촉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녹색 사기? 친환경 정책의 운명은

트럼프는 지금껏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선 강한 논조로 비난해왔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뉴욕 경제 클럽 행사에서 “‘그린 뉴 스캠(신종 녹색 사기)’이라고 부르는 그린 뉴딜을 종료시키는 게 나의 계획”이라며 “다시 대통령으로 뽑히면 IRA 관련 미사용 기금을 회수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화석연료 채굴·사용을 억제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 때문에 에너지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고 여긴다. 트럼프는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 대응 합의문인 파리협정 탈퇴까지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가, 바이든 정부에서 재가입한 바 있다.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소비하는 국가인 미국이 친환경 전선에서 이탈하면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 대응도 차질이 클 것이란 평이다.

에너지 정책의 급격한 방향 전환은 무역분쟁을 격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철강 등 6개 품목을 수입할 때 생산자에게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만큼 일종의 탄소세를 내도록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프레데릭 에릭손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 소장은 “유럽이 사실상의 ‘환경 관세’를 도입하면 트럼프는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국이 보편관세를 시행하면 유럽이 즉각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큰데, CBAM 같은 제도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무역 분쟁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양진경

다만 기후·에너지 정책의 완벽한 ‘유턴’은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 블룸버그는 ‘트럼프는 바이든의 기후법안을 해체할 계획이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IRA 법안 통과에 찬성하지 않았더라도 (IRA를 통해 지급되는) 보조금은 공화당 의원들의 지역구에서 인기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강세 지역)’ 중 태양광·풍력 발전이나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덕분에 지역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같은 혜택을 누리는 곳도 적지 않다.

대선 기간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친환경 유턴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영국 레딩대 기후와정의센터 소장인 크리스 힐슨 교수는 “머스크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지장을 받으며 테슬라가 덜 팔리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 승리 연설에서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한 머스크를 “새로운 스타” “이 나라에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라고 불렀고, 신설 정부 조직인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임명했다.

◇'비트코인 수퍼파워’ 공약에 불붙은 가상 화폐

트럼프는 지난 7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미국을 가상 화폐의 수도, 비트코인 수퍼파워로 만들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 자산으로 지정해 비축하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자 비트코인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선 당일까지도 6만달러대 후반에 머물던 비트코인 가격은 13일 역대 최고가인 9만3434.36달러까지 올랐다. 암호 화폐 분석 업체인 10x리서치의 마르쿠스 틸렌 최고경영자(CEO)는 “기관 투자자들이 가상 화폐에 우호적인 정치 지형에 화답해 적극 투자에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연말에는 10만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가상 화폐에 대한 명확한 규제 체계를 마련한다면, 이는 관련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온다. 가상 화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관련 규제 마련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가상 화폐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의 청이 옹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책 총괄은 “이번 대선은 가상 화폐 규제를 관장하는 SEC의 리더십이 교체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규제 당국의 새 수장이 확실한 규제 체계를 내놓는다면 글로벌 가상 화폐 시장에 긍정적인 일”이라고 했다.

◇반도체 보조금 백지화 가능성은 작아

트럼프 2기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근심도 커질 전망이다.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이 반도체법(일명 ‘칩스법’)에 따라 약속받은 보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TSMC는 66억달러, 삼성전자는 64억달러 규모 보조금을 약속받고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지난달 한 팟캐스트(온라인 음성 방송) 인터뷰에서 칩스법을 비판하며 “(수입되는) 반도체에 고관세를 매기면 해외 반도체 기업이 아무 대가 없이 미국에 생산 시설을 짓게 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다만 많은 반도체·통상 전문가들은 칩스법에 대한 트럼프의 비난이 ‘선거 구호’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한다. ‘칩워(Chip War·반도체 전쟁)’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칩스법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의회에서 통과됐고 공화당·민주당 모두 지지하는 제도”라며 “새 행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무효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중국 반도체 찍어누르기는 더 강력해질 수 있다. 밀러 교수는 “트럼프 정부가 AI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부문에 대한 규제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 중국 반도체 기업에 첨단 반도체 기술을 이전하지 못하도록 틀어막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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