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꿈꾼다, 재생 가능한 건축…톱밥·페트병·야자 껍질로 빚은 도시의 미래

구교범 2024. 11. 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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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최대 디자인 박람회 '두바이 디자인 위크'
중동 지역 최대 디자인박람회인 두바이디자인위크(DDW)가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40개국 300개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두바이디자인위크 제공

두바이 한복판에 등장한 요상한 건축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할리파’, 세계 최대 쇼핑몰 ‘두바이몰’, 세계에서 가장 큰 관람차 ‘두바이 아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거대 자본을 앞세워 첨단 건축의 경연장으로 널리 알려진 이 땅에 지난 5일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밋밋한 회색 벽돌과 지푸라기, 쓰레기로 만든 엉성하고 얼룩덜룩한 건물들이 두바이 한복판에 나타난 것. 중동지역 최대 디자인 박람회인 ‘제10회 두바이 디자인 위크(DDW)’에서다.


40개국에서 온 300개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5일간 참여한 DDW는 중동지역 최대 디자인 박람회다. 두바이를 중동 예술의 수도로 만들자는 취지로 2015년 첫선을 보였다. 두바이 디자인 지구(D3)에서 건축물과 설치미술을 선보이고, 컨템퍼러리 디자인 박람회 ‘다운타운 디자인’, 중동 지역 최초 한정판 미술·디자인 박람회 ‘에디션스’도 함께 열린다. 올해의 큰 테마는 ‘재생 가능한 건축’이었다.

바나나 껍질·톱밥…건축의 미래 '쓰레기'

D3의 키워드는 재생 가능성이다. 세계 각국의 친환경 건축기술 회사들이 신기술을 선보인 설치물이 곳곳에 보였다. 일본 건설사 미쓰비시지쇼디자인은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3차원(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한 티하우스를 선보였다. 톱밥으로 3D 프린팅 재료인 필라멘트를 만들고, 네모난 깔때기 형태의 찻집을 지었다. 이때 접착제와 못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 전통 건축 방식을 따라 나무판자를 퍼즐처럼 끼워서 맞춘 점이 돋보였다.

이탈리아의 창작그룹 이솔라가 내세운 모토는 ‘순환 경제’다. 재활용 소재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새 물건들이 분해되면 다시 이를 재활용해 소재를 순환시킨 구조다. 소재는 밧줄, 페트병 뚜껑, 나무 섬유 등 각종 폐기물이다. 건축자재부터 나무판자, 가구, 휴대폰 케이스 등 삶에 밀접한 물건을 제작해 재활용 소재의 범용성을 보여준 게 특징이다. 그러면서 재활용한 소재의 질감과 색감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투박하지만 알록달록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스위스 건설사 옥사라(OXARA)는 진흙과 건축 폐기물을 재활용해 시멘트 대체재를 개발했다. 아직 3층 높이까지밖에 짓지 못하지만, 친환경 소재면서 가격도 저렴하다. 창립자 냔리 란드루는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90% 이상 절감할 수 있다”며 “이 소재를 이용해 만든 건축물의 60%는 또다시 재사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전쟁의 상흔, 디자인으로 극복


두바이 디자인 위크의 또 다른 화두는 팔레스타인이었다. 국적, 민족과 상관없이 이슬람을 믿는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는 각종 예술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대신 예술로 팔레스타인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축물은 D3 한가운데 자리한 난민용 숙소 ‘리루트(ReRoot)’다. ‘다시 뿌리내리다’라는 뜻의 이 작품은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을 위해 지어졌다. 레바논, 프랑스, 핀란드, 팔레스타인 출신 디자이너들의 합작품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한 명의 난민이 난민캠프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평균 17년. 단순히 비와 바람을 피하는 용도에 그치지 않고 피란민이 편안함을 느끼고, 고향을 추억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달팽이 껍데기처럼 입구부터 방까지 나선형 구조로 구성해 문 없이도 아늑함과 안정감이 느껴지도록 설계했다.

난민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기능도 더했다. 집에 붙은 화단에서는 고향에서 자라는 식물을 기를 수 있고, 여러 개의 유닛을 조합해 1인 단위부터 가족, 한 마을이 생활할 집을 조립할 수 있다. 이 집에는 곰팡이의 한 종류인 ‘마이실리움’이라는 소재가 쓰였다. 야자나무 껍질을 배양해 제작한 이 소재의 가장 큰 장점은 친환경적이면서 매번 자재를 옮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무껍질, 톱밥 등 유기물 쓰레기만 있으면 난민들이 직접 배양해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보온 효과는 물론이고 불이 잘 붙지 않는 내화성을 지닌 데다 가볍기까지 하다. 리루트의 개발자 앤디 카르티에는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리루트의 목적은 ‘생명을 다시 만든다’에 있다”며 “친환경 소재를 통해 이 철학을 사회 공동체뿐 아니라 자연환경에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땅의 난민들을 위하여

UAE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디자인 편집숍 ‘아트 자밀 숍’에도 난민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그중 매장 한가운데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내놓은 홈데코 브랜드 ‘메이드51(MADE51)’의 팝업이 눈에 띄었다.

메이드51의 작품은 피란민이 자신들의 전통 문양과 공예 방식을 활용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파우치, 인형 같은 작은 액세서리 등이다. 이 수익금은 전쟁과 재난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피란민을 돕는 데 사용된다. 난민들이 자신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지키는 동시에 제품 생산으로 경제적인 수입을 얻고 경제적 자립 능력을 기를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각 제품이 담긴 상자에는 ‘요르단에 사는 시리아 난민 여성 OOO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라는 표시가 있다. 그 위에는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 대표가 쓴 문구도 적혀 있다.

“이 작품에는 역사와 문화, 전쟁과 탄압을 피해 도망친 한 인간이 아름다움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두바이=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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