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한자 독해 같은 문해력 떨어지면 대중무역에 차질… 근본적 대책 필요"
"중·장년층들도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모 굴지의 기업으로 중국에서 계약 내용이 이 메일로 전송되었는데 한국 측 담당자가 문서의 가장 기초적인 숫자 6과 7, 9에 해당하는 한자 六, 七, 九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임의로 해석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지분에 관한 내용이라 적지 않은 손실을 봤다는 말을 한 임원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명역 고전'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김원중(60·사진)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져 빚어진 극단적인 일화를 들려주며 문해력(文解力)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배울 만큼 배운 직장인이 문해력으로 인해 타격을 입었을 정도이니 초·중·고등교육 현장의 현실은 어떻겠느냐"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최근 전국 초·중·고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 조사 결과, 해당 학년 수준 대비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의 비율이 '21% 이상'이라고 답한 교원이 절반(48.2%)에 가까웠다. '31% 이상'이라는 답변도 19.5%나 됐다.
사건의 시발점(始發點)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왜 욕하느냐'고 따져 묻거나 두발 자유화 토론에서 '두발이 두 다리인 줄 알았다'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추후 공고'는 어디 있는 공업고등학교인지 묻는 대학생, 성교육 관련 조사를 위해 '성적 문제'에 관해 질문이 나오면 '공부 성적'을 의미하는 거냐고 반문하는 세상이다.
김 교수는 해법 중 하나로 한자 교육을 꼽았다. 그는 "사흘이란 순 우리말을 4일로 이해하거나 금일과 금요일을 혼동하고 연중무휴의 의미가 뭔지 모르는 학생들이 드물지 않다"라며 "국어국문학과에서도 한문 과목을 거의 배우지 않으니 문해력이 떨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법과 관련된 용어의 90%가 한자어다. 부동산 거래를 하는 데 매수인과 매도인. 임차인과 임대인, 잔금, 채무불이행, 매매계약 같은 개념을 모르니 어떻게 계약서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개념이나 용어가 한자어로 돼 있는 만큼 기본적인 한자어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문해력 논란이 과장됐다는 반론아 없지는 않다. 사용하는 어휘가 다른 세대 간 차이로 볼 측면이 있다는 시각이다. "저는 이런 비유를 하고 싶어요. 마치 안개 속을 헤집고 자동차가 달려가는 듯한 느낌 말입니다. 제대로 된 국어교육을 해야 합니다. 8년 전에 교육부에서 초등생 교과목에 한자어 병기 작업을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공포까지 한 뒤 폐기 처분한 사례가 있습니다. 수학과 생물, 과학 용어의 거의 대부분은 한자어의 개념을 모르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김 교수는 이른바 '벽돌책', 그것도 동양 고전 번역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찌감치 번역한 '삼국유사'는 45만부 넘게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사기열전'과 '손자병법' 등은 동양번역서의 고전이 됐다. '김원중 교수의 명역 고전' 시리즈는 '장자' 출간을 마지막으로 8년 만에 1차 완간됐고, 그의 후속 작업도 기다려진다. '한비자'를 시작으로 '정관정요' '손자병법' '명심보감' '채근담' '논어' '노자 도덕경' '대학·중용'이 그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모두 더하면 4332쪽에 달한다.
그는 "오늘도 뉴스에 '당국, 환율 구두 개입'이 각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떴다"라며 "이게 다 한자다. 이것을 과연 초중등 학생들이 제대로 알까? 언제까지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현상을 계속 놔두어야 할까"라고 되물었다.
문해력 문제는 자연스럽게 장년층 이상의 '디지털 문맹'으로 옮겨간다. 고전번역가인 그도 혹시 디지털 문맹이 아닐까. 김 교수는 "교육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교과서를 디지털 교과서로 바꾸려는 것이 거의 확정적으로 논의될 만큼 기계적인 게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 현실이다"라며 "저를 포함한 장년층은 거의 디지털 문맹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디지털 혁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술통합이나 학제 간 접근, 협동정신학습, 데이터기반 의사 결정 같은 융합적 사고를 위해 디지털 활용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대 간 소통 능력 확장을 위해서라도 서로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교수는 "저도 챗GPT 활용 등 배워나가도록 땀을 흘리고 있다"라며 아래와 같이 말을 맺었다.
"물론 SNS의 발달로 인해 한글의 효용성이 큰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장기적인 포석을 그려봐야 하는데 인문학적 소양 교육과 인성 교육의 강화를 위해 젊은 세대는 균형 잡힌 인간관,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문해력 갖춘 사람이 돼야 합니다. 특히 중장년층도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관련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세종=송신용기자 ssyso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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